건설업 산재 1위의 이유…원가·납기 구조가 안전 밀어냈다 [산재 공화국, 시스템의 부재 下-①]

안전의 언어가 더 이상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까지 나서 매일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묻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고 있다. 수많은 대책과 제도 마련에도 ‘죽음의 곡선’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의 세 배, 영국의 열세 배에 달한다. 사고는 줄지 않고 이동했다. 대기업에서 빠져나간 위험은 하청과 재하청, 영세사업장,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형 노동으로 옮겨갔다. 정부의 공식 지표가 말하지 않는 ‘숫자 밖의 죽음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위험은 사전에 관리되지 않고 사고는 발생한 뒤에야 기록된다. 원인은 반복되지만 추적되지 않고 책임은 분산된다. 산재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산재를 끝까지 세지 못하는 나라에 가깝다. 본지는 대통령의 선언 이후에도 산업현장이 왜 달라지지 않았는지, 왜 국가의 안전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지를 집중 점검한다.

공기·원가표에 밀리는 안전
하도급·감독 공백, ‘사후 대응’만 빨라졌다

건설업이 산업재해 ‘왕좌’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는 위험한 작업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원가와 납기, 하도급 구조가 안전을 뒤로 미루는 공식처럼 작용했다. 사고는 반복되는데 위험을 줄이는 의사결정은 공정표와 원가표 뒤로 밀린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지난해 5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403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전국 62개 현장 가운데 55곳에서 위반 사항이 확인됐으며 안전난간·작업발판 미설치 등 기본 안전조치 미이행 30건은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안전교육 미실시와 안전관리자 미선임 등 관리적 의무 위반 228건에는 총 5억322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이 같은 사례는 개별 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산업현장 사고사망자는 457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건설업 사망자는 210명으로, 전체의 45.9%에 달한다. 건설업 사망자는 전년 동기 대비 7명 늘었고 특히 공사금액 5억 원 미만 소규모 현장 사망이 72명에서 91명으로 26.4%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관리 체계가 갖춰진 50인 이상 사업장·대규모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182명으로 1년 전보다 12명 줄었다. 위험이 ‘관리의 공백’이 큰 구간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재래식 사고’가 반복되는 점도 문제다. 같은 기간 떨어짐(추락) 사망자는 199명으로 전년보다 36명 늘었다. 부딪힘(45명)과 깔림·뒤집힘(30명)도 증가했다. 안전장치와 작업계획, 점검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상당 부분은 줄일 수 있는 유형들이다. 같은 형태의 사고가 줄지 않는 것은 현장이 안전 수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전이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이 고착돼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공기와 비용의 경직성이 안전을 압박한다고 지적한다. A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와 공기를 정할 때 안전을 최우선으로 반영하려 하지만 원자재 수급 차질이나 파업 등 변수가 겹치면 입주·대출·잔금 일정까지 고려해 공정을 당겨야 하는 압박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해진 공기·정해진 단가가 변수를 흡수하지 못하면서 후반 공정으로 갈수록 무리한 만회가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안전 점검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설명이다.

하도급 구조는 통제가 느슨해지는 구간을 만들어 책임의 비대칭을 키운다. B사 관계자는 “하도급 단계에서 소규모 업체가 안전보건체계(인력·장비·작업계획)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 구간에서 관리가 흔들리면 사고 위험이 커진다”고 하소연했다. C사 관계자는 “통제권이 없는 책임이 원청에 쌓이는 구조”라며 “재하청 인력의 손끝까지 들여다볼 수 없는데 사고가 터지면 모든 화살은 원청으로 향한다”고 설명했다. 원가·공기·수주 구조는 상층에서 결정되지만 사고의 비용은 현장과 하부에서 먼저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불법 하도급 단속과 현장 감독을 병행하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불법 하도급과 안전조치 실태를 합동 점검하며 원도급 책임을 강조했다. 다만 산재 통계가 ‘후행지표’라는 정부 설명처럼 점검과 처벌만으로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즉각 바꾸긴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산재 발생 기업·기관을 강하게 질타하며 제재 방안을 직접 언급했다. 특히 포스코그룹 사망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하며 범부처 대응을 촉구했다. SPC삼립 공장을 찾아 현장 안전 문제를 따져 묻는 행보도 이어졌다. 그러나 건설 현장에서는 강한 메시지가 곧바로 안전으로 이어지려면, 원가·공기·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이 ‘기본값’이 되도록 설계 단계부터 바뀌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이 경영의 최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확산했다. 현장 차원의 작업중지권 발동 등 자발적 안전 활동이 강화됐고 기업들도 인센티브와 내부 기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다만 안전을 여전히 비용으로 보는 인식이 존재한다. 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서류 대응이 늘어날수록 공정과 원가의 압박 속에서 안전이 다시 밀릴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업계에서는 처벌과 점검이 ‘사후 대응’이라면 안전비와 공기, 하도급 관리 체계를 ‘사전 설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C사 관계자는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품질과 생산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며 “입찰·공기·원가 구조가 안전을 밀어내지 않도록 시스템부터 바꾸지 않으면 같은 사고는 다른 현장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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