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언어가 더 이상 현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매일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묻지만 사고는 멈추지 않고 있다. 수많은 대책과 제도 마련에도 불구, ‘죽음의 곡선’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의 세 배, 영국의 열세 배에 달한다. 사고는 줄지 않고 이동했다. 대기업에서 빠져나간 위험은 하청과 재하청, 영세사업장,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형 노동으로 옮겨갔다. 정부의 공식 지표가 말하지 않는 ‘숫자 밖의 죽음들’이 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위험은 사전에 관리되지 않고 사고는 발생한 뒤에야 기록된다. 원인은 반복되지만 추적되지 않고 책임은 분산된다. 산재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산재를 끝까지 세지 못하는 나라에 가깝다. 본지는 대통령의 선언 이후에도 산업현장이 왜 달라지지 않았는지, 왜 국가의 안전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지를 집중 점검한다.

산재 예방을 위한 예산과 제도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지만 산업 현장의 사망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이 산재를 국정 핵심 과제로 직접 챙기고 있음에도 안전 대책이 현장에서 결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가 안전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 태스크포스(TF)는 고용노동부와 함께 올해 산재 예방 예산을 1조5758억 원으로 편성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또 다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을 중심으로 예산과 입법을 동시에 추진하는 배경은 산업 현장의 위험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산재 사고사망자는 45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14명 늘었다. 건설·물류·제조 현장을 중심으로 대형 사망사고가 이어지며 산재 지표는 더욱 악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재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에 머무는 현실에서 경제 규모만으로 국격을 말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아침에 나간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라는 표현은 산재를 개인의 불운이 아닌 국가 운영의 실패로 규정한 선언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취임 직후부터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오늘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몇 명 사망했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국무회의와 관계부처 회의에서 산재 발생 여부는 상시 점검 대상이 됐다.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 고위험 사업장 집중 관리까지 산업안전 정책은 전례 없이 확대됐다.
점검과 질의는 이어졌지만 산재 감소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산재 관리 체계가 사고 발생 이후의 통계 집계에 집중돼 있어 위험이 축적되는 과정까지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방 중심의 관리 체계가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통계는 이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3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증가분의 대부분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5명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사망자가 급증했고 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갖춰진 50명 이상 사업장에서는 감소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의원은 “산업안전 제도의 한계는 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업장 자기규율과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며 “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예방의 주체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