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 부진까지 겹쳐
정책 혼선으로 서학개미 불안감↑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세가 환율 리스크를 뚫고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근접하는 등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순매수가 반복되고 있다. 국내 증시 부진 속 자금이 미국 인공지능(AI)·빅테크·양자컴퓨터 테마로 몰리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에 서학개미 흐름을 되돌릴 뚜렷한 정책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통화 당국의 메시지마저 뒤엉키며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1월 한 달간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59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대치였던 10월(68억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60억 달러대’ 초대형 매수가 이어진 셈이다. 개인 매수는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존 AI 대장주에 더해 IBM·리게티컴퓨팅 등 양자컴퓨터 관련 종목으로 확장되며 패턴을 더욱 넓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매수세가 환율이 가장 불리한 시점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11월 28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7원 오른 1470.6원으로 마감했고 장중 1471.0원까지 치솟았다. 개인 투자자에게 사실상 ‘고점 환율’ 구간이다. 이 같은 수준에서 달러를 매수해 미국 주식을 사면 매수 직후부터 환차손 위험에 노출된다. 환율이 정상화될 경우 수익률이 크게 훼손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그런데도 개인 달러 매수가 이어진 것은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불안 심리와 미국 기술주의 상대적 우위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 부진도 해외 쏠림을 부추겼다. 11월 코스피는 4221.87(3일)에서 3926.59(28일)로 30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AI·빅테크 실적 호조로 상승세를 이어간 미국 시장과 명확히 대비되면서 “미국 시장이 국내 시장보다 낫다”는 개인 심리가 강해졌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정책·통화 당국 메시지 혼선이 서학개미의 불안 심리까지 키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쿨해서’라고 답했다”며 “만약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이는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환율 급등의 일부 책임을 개인 투자 행태에 돌린 듯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지며 적절성 논란을 낳았다.
기획재정부도 논란을 일으켰다. 구윤철 부총리는 해외주식 양도차익 과세 강화 가능성에 대해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정책은 언제든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기재부가 “추가 과세를 검토한 적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서학개미 사이에서는 세제 불확실성이 확산한 상황이다.
온라인상에서는 ‘해외주식 양도세 40% 인상·보유세 신설’ 등을 담은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허위 담화문까지 유포돼 불안을 확대했다. 대통령실은 “명백한 허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시장에서는 고환율·변동성·세제 논란이 겹치며 서학개미가 정책 메시지에 극도로 민감해진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편, 미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11월 들어 관찰된 지급준비금의 소폭 회복과 재무부 일반계정(TGA) 감소세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정부 발 유동성 공급 장세’로 진입하는 초입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이어진 증시 반등은 12월 금리 인하 확률 상승이나 ‘제미나이 효과’에 더해 구조적 유동성 공급 사이클 전환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내년에도 안정적인 TGA 운용과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 소프트랜딩 시나리오가 맞물린다면 글로벌 증시의 회복 탄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