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는 오래 쌓는 자산, 인기보다 지속”
핵심 섹터 집중, 인프라부터 쌓은 타임폴리오

대형 운용사가 지수 추종 ETF로 시장을 넓혀왔다면,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다른 길을 택했다. 상품 숫자를 늘리는 양적 확장이 아니라 확신 섹터에 집중하는 액티브 전략이다. 1986년생으로 업계 최연소 ETF 본부장인 김남호 타임폴리오 ETF운용본부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ETF 시장이 성숙할수록 단순 추종은 의미가 없다”며 “판단과 리서치가 진짜 경쟁력인 시대”라고 말했다. 액티브 ETF는 펀드매니저가 유망한 종목을 직접 골라 비중을 조정한다.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패시브 ETF와 달리 시장 판단이 핵심이다.
ETF 시장 환경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말 4조6000억 원이던 국내 주식형 액티브 ETF 순자산은 지난달 말 11조 원을 넘겼다. 단순 지수분배가 아니라 능동적 자산배분이 시장 중심축으로 올라선 흐름이다. 타임폴리오의 ETF 순자산은 3조6800억 원을 돌파했다. 단 17개 상품만으로 이룬 성과다. 소수 정예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김 본부장은 산업은행 PE(사모펀드) 본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한화자산운용 ETF팀에서 근무하며 ETF 운용 경험을 쌓았다. 그는 “지수를 어떻게 구현하고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 당시엔 정형화된 방식이 거의 없었다. 각 상품에 맞는 원칙과 프로세스를 직접 만들며 배웠다”고 말했다.
2021년 타임폴리오에 합류했을 때 상황은 말 그대로 ‘백지’ 상태였다. 조직 틀만 있고 실제 ETF 운용 체계는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스템을 갖추게 최우선 미션이었다. 김 본부장은 “ETF는 팀워크의 산물이다. 리서치, 트레이딩, 리스크, 백오피스가 맞물려야 의미가 있다”며 첫 “6개월 동안 그는 일종의 ‘ETF 공장’을 구축했다”고 회상했다.
리서치와 트레이딩 기능을 분리해 ‘확신 기반 종목 선정’을 정착시켰고 매수·매도 원칙·포지션 한도·리밸런싱 기준을 문서화했다. 단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ETF 하나에 100개 기준표’라는 내부 원칙을 세운 것이다. 시장 충격 비용을 최소화하는 체결 알고리즘과 리스크 대응 프로세스도 직접 설계했다. 이렇게 만든 체계는 지금도 각 상품 운용의 기반이 된다.
자연스럽게 조직도 불어났다. 당시 3~4명 수준이던 ETF 인력은 현재 운용·전략·리스크 포함 9명 체제로 커졌다. 김 본부장은 “ETF는 상품 기획이 아니라 시스템·사람·리스크가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라며 “속도보다 체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투자 대상을 고를 때 단기 이슈보다 산업의 큰 흐름을 우선한다. 그는 “ETF는 흐름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오히려 원칙이 강해진다는 설명이다. 환경이 흔들려도 확신이 있는 자산군에 깊게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같은 기조는 타임폴리오가 상품을 다작으로 확장하기보다 선택한 영역을 깊이 파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김 본부장은 가장 먼저 AI를 언급했다. 그는 “AI는 반도체에서 전력 인프라, 컴퓨팅, 로보틱스까지 이어지는 산업 구조”라고 설명하며 “특정 테마가 아니라 자본이 이동하는 경로”라고 강조했다.
타임폴리오는 이러한 성장축을 따라 포트폴리오를 설계해왔다. 김 본부장은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압축하고 확신이 있는 영역에서는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AI·전력 인프라 중심 ETF는 시장 변동 속에서도 꾸준히 자금이 유입됐다.
그는 ETF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단기 매매보다 체계적 비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TF를 사고파는 수단으로 보면 어렵다. 포트폴리오라는 큰 틀을 세우고 시장 상황에 맞게 비중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한 자산배분형(EMP) ETF 역시 같은 철학에서 출발했다. 김 본부장은 “개인이 모든 테마를 직접 추적하기 어렵다”며 “ETF 안에서 리밸런싱이 작동하고 여러 산업이 균형을 이뤄야 장기투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 본부장에게 ETF는 단순 수익 상품이 아니다. 변동을 견디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자산 구조다.
최근 업계의 초저보수 경쟁에 대해서도 원칙을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ETF는 결국 운용과 리서치 비용이 들어간다. 가격 경쟁만 남으면 투자자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면서도 “투자자 혜택 확대는 중요하지만 기본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개인투자자에게는 시간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ETF는 많이 담는 것이 아니라 오래 쌓는 자산”이라며 “단기 매매로 접근하면 ETF의 본래 역할을 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섹터 배분과 시장 국면별 비중 조정이 결합된 포트폴리오 설계가 장기투자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ETF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김 본부장은 “지금은 초입 단계다. 연금 자금 유입, 모바일 투자 문화, 정보 접근성 확대가 맞물리며 ETF는 자산관리의 기본 언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액티브 ETF의 ‘지수 상관계수 0.7 이상’ 유지 규제를 언급하며 “투자자 보호 취지는 이해하지만 운용 자율성이 제약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국내 액티브 ETF에 적용되는 지수와의 상관계수 0.7 이상 유지 의무는 매니저가 지수 대비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차별화하기 어려운 규제로 꼽힌다. 그는 “성과 검증과 투명 공시를 강화하는 대신 일정 수준의 전략적 자유가 인정돼야 시장이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본부장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빠르게 숫자를 늘리는 ETF보다 오래 남는 ETF를 만들고 싶다”며 “ETF 시장이 커질수록 본질은 결국 리서치와 책임”이라고 했다. 이어 “투자자의 시간을 지켜주는 자산을 만드는 것이 운용사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