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간(肝)의 날’ 기념식 개최…국내 간 질환 치료 환경 개선점 논의

‘제26회 간(肝)의 날’을 맞아 의료계 전문가들이 국내 간염 퇴치와 간암 치료 성과를 공유했다. 전문가들은 ‘치료 가능한 질환을 방치하지 않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일 한국간재단과 대한간학회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간의 날 기념식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 1부에서는 간질환 퇴치를 위해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표창과 공로상을 전달하고, 2부에서는 ‘한국 간(肝)질환의 현주소와 우리의 과제’를 주제로 간염과 간암 치료 환경을 돌아보는 발표를 진행했다.
국민의 간 건강 증진과 간질환 퇴치를 위해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수여되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은 김학철 원광의대 명예교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평가부가 수상했다.
김 교수는 30년 이상 원광의대에 재직하면서 간질환 연구와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학술교류, 의학 교육 및 신진 연구자 발굴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평가부는 최근 2주기 1차 간암 적정성 평가를 통해 기존 수술 중심 평가를 넘어 환자 중심 성과 중심의 암 진료 전반을 평가 중심축으로 전환했다.
공로상은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 대전 서구갑)이 수상했다. 장 의원은 7월 국회에서 ‘간염 정책 글로벌화를 통한 국민 간 건강권 보장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간염 관리 거버넌스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한국간재단과 대한간학회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국민에게 간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이해를 제공하고자 2000년부터 매년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2부 행사에서는 장은선 대한간학회 의료정책위원회 위원(서울의대 교수)이 ‘한국인의 바이러스간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발표했다.
국내 간암의 61%는 B형간염이 원인이며, 한국 인구 10만 명당 간암 사망률은 19.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에 올랐다. 특히 간암은 경제활동 연령층(15~64세) 암 사망 원인 1위(15.4%)를 차지해 사회적 타격이 큰 질병이다. 하지만 B형간염 환자의 약 75%는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고 있으며, 진단 후 치료로 연계되는 비율(linkage-to-care)은 40% 미만에 그친다.
장은선 위원은 “바이러스 간염은 여전히 국내 간질환과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효과적인 관리와 치료 확대 없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2030년 간염 퇴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환자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회색지대 환자군은 간수치(AST·ALT)가 정상 범위이거나 바이러스 역가(HBV DNA)가 현행 급여기준(2000IU/mL)에 미달해 치료 대상에서 제외된 환자들이다.
김인희 대한간학회 의료정책이사(전북의대 교수)는 “회색지대 환자들이 장기적으로 간경변증과 간암으로 진행하는 비율이 높음에도, 제도적 한계로 인해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급여 기준에 미달하는(HBV DNA ≥ 2000 IU/mL) 환자 전원에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할 경우 2035년까지 간암 약 4만3000건과 사망 약 3만7000명을 예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대한간학회는 B형간염 관리 강화를 위해 △치료 기준 완화 및 급여 확대 △진단–치료 연계체계 강화 △국가 차원의 장기 추적관리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김윤준 대한간학회 이사장(서울의대 교수)은 “B형간염은 단순히 추적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조기 치료로 간암을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치료 확대가 국가 간질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C형간염 환자가 의료체계 밖에 놓여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C형간염은 예방 백신이 없지만, 경구용 항바이러스제(DAA) 복용만으로 98% 이상의 완치율을 보인다. 그간 국가 단위의 선별검진 체계가 부재하다가, 올해부터 만 56세를 대상으로 국가건강검진에 C형간염 항체검사가 도입됐다.
학회는 보다 광범위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전 국민 선별검사 확대와 치료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뮬레이션 연구에 따르면 4년마다 전 국민 선별검사(수검률 80%)와 치료율 80%를 유지할 경우 약 18년 내 C형간염 퇴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C형간염 환자를 조기에 진단해 치료하면 간경변증과 간암을 예방하고, 감염 확산을 차단해 사회 전체의 보건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숙향 대한간학회 회장(서울의대 교수)은 “C형간염은 무증상 감염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곧 예방이며 완치로 가는 첫걸음이다”라며 “국민 누구나 쉽게 검사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진정한 간염 퇴치가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연자로 나선 전영은 대한간학회 보험위원회 위원(차의과대학 교수)은 ‘국내 간암 치료의 현주소: 임상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라는 주제로 국내 간암 치료의 현황과 주요 한계, 향후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전영은 위원은 “간세포암은 전체 원발성 간암의 80~90%를 차지하며, 국내에서는 40~50대 암 사망 원인 1위, 전체 암 사망 원인 2위로 여전히 가장 치명적인 암종”이라며 “간암은 종양의 진행 정도, 간기능 상태, 환자의 전신 컨디션이 예후를 함께 결정하기 때문에, 치료 전략 수립에 있어 다학제적 접근(multidisciplinary approach)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전영은 위원에 따르면 간암은 하나의 치료법이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복잡한 특수성이 있다. 국내 간암 환자의 약 절반(48.8%)이 진단 시 이미 진행기(Advanced stage)에 해당하며, 이 병기에 해당하는 환자들은 수술이나 국소치료가 불가능해 (Systemic therapy)로 진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현웅 대한간학회 보험이사(연세의대 교수)는 “어떤 환자를 경동맥화학색전술(TACE)로 치료하고, 어떤 환자에게 전신치료를 적용할지 명확한 기준이 부족해 진료현장에서 다학제 협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복된 TACE로 인한 간기능 저하와 합병증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 TACE 불응성(refractoriness) 환자에 대해서는 조기 전신치료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진행성 간암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할 수 있는 면역항암치료제(면역관문억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영은 위원은 “실제 임상에서는 간문맥 침범, 다발성 병변, 간외 전이 등 국소치료가 어렵거나 효과가 제한적인 환자들이 많지만, 현 급여체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1차 치료제로 사용 중인 티센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의 급여 인정 기간도 개선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현재는 ‘최대 1년(임상 근거 발표 시 2년까지 연장)’으로 제한되어 있어, 장기 반응 환자의 치료 지속성 보장이 어렵다. 이현웅 이사는 “면역항암치료제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에게 치료 중단을 강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실제 근거 기반의 탄력적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현행 간암 적정성 평가 제도가 임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형식적인 등급화와 과도한 지표 중심의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유병철 한국간재단 이사장(한림의대 명예교수)은 “간암 치료의 복잡성과 환자 개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지표 개발 요구는 평가의 본래 목적을 흐릴 수 있다”라며 “임상적으로 타당하고 측정 가능한 지표 개발, 데이터 기반 평가체계 구축, 병원 간 형평성을 보장하는 위험보정 기준 마련과 함께 현장 중심의 피드백과 교육 강화를 병행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