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왜 열광하나] 피의 찬미, 이종격투기의 흥행 공식

입력 2014-10-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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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깬 폭력성에 현대인 일탈 쾌감…승부 예측 불허 드라마틱 명승부도

▲옥타곤 위 처절한 승부가 마니아들을 환심을 샀다.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논란 속에서도 흥행은 이어지고 있다. 이종격투기 흥행 뒤에는 일탈을 꿈꾸는 현재인의 보이지 않는 심리가 녹아 있다.

두 사내가 옥타곤(철망으로 둘러싸인 팔각형 격투기 경기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강한 눈빛을 교환했다. 서로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다. 경기장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다. 두 사내는 곧 피를 튀기며 처절한 싸움을 이어갔다.

승부의 끝은 파운딩(누운 상태에서 가하는 펀치)이었다. 이미 쓰러져 극단적 방어 자세를 취하던 한 사내에게 무차별 펀치를 가했다. 끔찍할 만큼 출혈이 일어났고, 바닥은 핏물로 젖어들었다. 그때서야 레프리 스톱이 선언됐다. TKO로 승리를 거머쥔 사내는 포효했다. 그러나 옥타곤을 둘러싼 관중은 싱겁게 끝난 경기가 다소 실망스럽다는 듯 야유와 함성을 동시에 쏟아냈다.

UFC 경기의 한 장면이다. 충격적일 만큼 잔인하고 파괴적인 경기다. 유도, 복싱, 태권도 등 기존 투기(鬪技) 종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나 옥타곤 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경기에 열광하는 걸까. 이들은 무엇을 위해 옥타곤에 올라 처절한 싸움을 펼치는 걸까. 경기 후에도 진한 여운이 감도는 격투기 경기에는 풀리지 않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상식을 깨는 폭력성에 열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외교학부 교수는 “격투기는 폭력성을 넘어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대리만족을 통한 욕구 충족이 가능하다.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파괴심리, 그리고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억제된 욕구를 짐작할 수 있다”라며 “요즘은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직접 격투기에 참여하는 젊은 남성들도 크게 늘었다. 폭력적인 스릴을 즐기며 건강까지 챙기려는 마니아들이 늘면서 격투기 열기는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격투기의 본고장은 일본이다. 1990년대 각각 창설된 K-1과 프라이드 FC는 일본 열도를 격투기 열풍으로 이끌었다. 한때 UFC와 함께 세계 3대 격투기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일본의 격투기 열풍이 국내에 전해진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그러나 뒤늦게 격투기 시장에 뛰어든 한국은 마니아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일본에 비하면 10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성장 속도는 광적이었다. 이처럼 격투기가 한국에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기존 스포츠가 갖지 못한 독보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마지막까지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지녔다.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도 펀치 한 방에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경기 시간은 짧아서 10분 이상 소요되지 않는다. 짧은 경기는 1분 이내 끝나기도 한다. 바쁜 현대인들도 짧은 시간을 투자해 극한의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거추장스럽고 복잡한 룰도 없다. 레프리의 간섭도 최소화해 그야말로 날것 그 자체다.

반전 요소도 있다. 처절한 승부가 끝나면 두 선수는 서로를 위로하며 스포츠맨십을 발휘한다. 일그러진 얼굴에 온몸은 피범벅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남다르다. 그래서 마니아들은 격투기가 더 인간적이고 신사적인 스포츠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흥행에 있어서는 늘 물음표가 달린다. 대중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이라도 격투기의 잔인함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K1과 프라이드FC가 경영 악화로 UFC에 합병되면서 광적인 열기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박성희 교수는 “한국 선수들의 잇따른 패배 소식이 국내 격투기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지나칠 만큼 흥행만을 의식한 대회 운영은 격투기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행위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사회적 흐름으로 봤을 때 격투기는 흥행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추성훈의 복귀전 승리는 격투기 흥행에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KBS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가족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올린 추성훈이 격투기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감동과 인간승리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운영상의 묘를 잘 살린다면 격투기의 흥행은 결코 어둡지 않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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