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한국을 떠난 벤처인들… 그 결과는

입력 2014-07-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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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여 전 중국 심천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때 국내에서 MP3플레이어 전문기업을 운영했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되는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인물이었지만, 한 대기업에 지분투자를 받은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온 뒤 한국을 떠났다.

그가 현지에서 선택한 것은 개발 아웃소싱 회사. 중국은 풍부한 내수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IT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기에 한국 개발자의 인기는 높다고 했다. 그는 현지에서 MP3플레이어와 PMP(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등을 개발해 중국업체에 제공하고 있었다. 그는 “나같이 한국에서 온 개발자들이 중국 모바일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중국 모바일 기기 산업의 경쟁력은 한국인이 만들어 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4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전시회 때다. 본격적으로 중국 기업들의 성장이 가시화됐던 시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관계자들은 만나는 기자들마다 중국의 성장이 위협적이라고 말했고 이는 대서특필되면서 독자들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당시 이들 업체 한 관계자는 “중국이 많이 따라오고 있지만 기본기에서 큰 차이가 난다. 현재로서는 3년 이상의 기술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 간극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다시 2년이 흘러 2012년, 스페인에서 열린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를 취재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당시 중국 업체들은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다양한 휴대폰을 선보였고, 두께와 디자인도 국내 업체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품질을 보여줬다. 국내 업체들의 표정이 바뀐 것도 이때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세계 시장 수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지만, 뒤에서의 분위기는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한 국내 업체 임원은 “우리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쫓아왔다. 기술력과 디자인이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여서 우리도 놀랐다”고 토로했다. 2년 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흔히들 중국을 두고 ‘모방의 왕국’이라 부른다. 산짜이로 불리는 모방품이 현지 시장에서 범람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재 중국의 속도는 너무나 빠르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싸고 쓸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샤오미는 벌써 글로벌 5위권에 진입했다. 자국에서는 지난 1분기 애플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이 회사는 2014년에 4000만대의 스마트폰 출하 목표를 세웠다. 이는 2013년의 출하량 2000만대보다 두 배 증가한 수치다. 통신장비업체로 유명한 화웨이의 올해 판매 목표는 무려 8000만대다. 과거 애플이나 국내 업체의 MP3플레이어 모방품을 만들기 급급했던 중국 업체들은 이제 스마트폰 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매년 30~50%가량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성장의 모멘텀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으로 도약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는 5개가량이고 마이너 업체들은 20개 업체가 넘는다.

국내 시장을 돌아보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후발 주자는 없다. 팬택은 현재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시점이다. 이는 왜곡된 국내 시장 환경이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2000년대 초 벤처 중흥시대에 살아남은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의 생존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결과적으로 중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는 다시 한국 성장산업의 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왜 그들은 한국을 떠났을까. 십여년 전 멀티미디어 기기를 만들던 중견기업 사장은 회사를 폐업하고 캐나다로 떠나면서 말했다. “한국은 기업을 운영하기 너무 힘든 나라야. 한 번의 실패도 은행이나 투자자나 모두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지. 재기할 방법은 없어.” 그들이 가진 기술과 열정이 국내에서 다시 한 번 발휘될 날이 있을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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