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블록버스터 ‘쩐의 전쟁’] 100억 vs 2000억 충무로 혈전
한국과 미국의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한·미 양국의 치열한 전쟁터는 바로 여름 극장가다. 한국과 미국의 블록버스터들이 한치도 양보없는 흥행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양국 블록버스터의 규모 자체가 다르다. 20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와 1200억원의‘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 관객과 만나고 있으며 2000억원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31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1000억~2000억원대 제작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서 ‘군도:민란의 시대’(160억, 23일 개봉) ‘명량’(170억, 30일 개봉) ‘해무’ (100억, 8월13일 개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150억, 8월6일) 등 150억원 내외의 제작비가 투여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올 여름 한미 양국 블록버스터들이 흥행 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초대형 폭탄’이라는 의미의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1억~4억달러 등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블록버스터는 이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대규모 영화를 통칭해 부른다. 미국 블록버스터는 1950년대 대표적인 오락 매체 지위를 TV에 넘겨주면서 위기에 봉착하자 할리우드가 TV에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이 투여된 대형 영화 ‘십계’등을 제작하면서 본격화했다. 미국은 막대한 자본력과 빼어난 영상 기술, 첨단 효과 , 확실한 볼거리,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적인 단순한 스토리 등으로 무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앞장 세워 예술 영화가 자리 잡고 있던 유럽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아시아 등 전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했다. “할리우드의 가장 큰 경쟁력은 블록버스터에서 나온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강력한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영화 사상 관객이 가장 많은 영화 1위가 1362만명을 동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라는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한국 영화계도 2000년대 들어 한국 시장에선 규모가 큰 100억원대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2002년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억원대 제작비의 영화가 등장했다. 11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흥행에 참패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앙’이라는 오명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암운을 드리웠다. 2000년대 초반 ‘무사’‘2009 로스트 메모리즈’‘튜브’등 10여편의 100억원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흥행 몰락을 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흥행의 무덤’이라는 속설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이후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괴물’‘해운대’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중 성공한 작품도 있었지만 2011~2012년 ‘제7광구’‘퀵’‘라스트 갓 파더’‘마이웨이’등 100억~200억원대 대작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흥행’이라는 등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볼거리 위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는 수준이 높아진 한국 관객을 사로잡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화려한 볼거리에 부합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관객은 볼거리에 못지 않게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관람하는 경향이 강하다. 관객의 흥미와 감동을 이끌 수 있는 이야기 발굴과 독창적인 캐릭터, 볼거리와 이야기의 조화, 배우들의 연기력, 남녀노소를 만족시킬수 있는 작품이 아니면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라 하더라도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한국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었다. 재미 볼거리, 부족하지 않게 하는 것이 큰 목표였다.”(‘해적’이석훈 감독)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신화 같은 존재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영웅 이면의 한 인간인 이순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난관에 처했다. 그 분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혹시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됐다. 거대한 존재감에 부딪히게 될까. 어디서 풀어나가야 할지 업적과 신념을 2시간 안에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막막했다.”(‘명량’의 주연 최민식) “내가 맡은 돌무치는 7~8세 정도의 지능을 지닌 동화적이고 만화적인 캐릭터다. 이런 어수룩하고 순수하고, 순진한 인물이 나중에 도치로 변했을 때의 콘트라스트가 사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군도’의 주연 하정우) “‘해무’는 영화로 만들지 않고 배길수 없는 이야기이고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 없는 격렬한 인간드라마.”(‘해무’제작자 봉준호). 올 여름 관객과 만나는 4편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주역들이 그동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실패의 원인을 피하면서 영화의 강점을 강조한 다짐과 소감이다. 4편의 영화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화려한 흥행시대를 열지가 이 여름 뜨거운 관심사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