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모터키즈] 대한민국 올드카 살생부

입력 2014-05-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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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클래식카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유럽, 가까운 일본에도 클래식카 인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얹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동차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는 우리나라는 유독 클래식카와 인연이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이태리의 세계적인 클래식 카 랠리 ‘밀레 밀리아’(Mille Miglia)와 자매 제휴를 합니다.

2000년대 초부터 해마다 ‘라 페스타 밀레 밀리아’(La Festa Mille Miglia)라는 클래식카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행사를 위해 이태리에서 클래식카를 고이 모셔오기도 합니다.

▲사진 위는 1953년형 메르세데스-벤츠 300SL. 아래는 전설의 스포츠카의 맥을 이어 2011년 등장한 SLS AMG입니다. 자동차에게 역사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무형의 가치입니다. 국내 자동차 기자 가운데 유일하게 2가지 모델을 전부 시승해보는 영광도 누려봤습니다.

정작 글로벌 자동차 생산 5위권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이제껏 클래식카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애당초 우리 기술로 자동차 조립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 그나마 조립생산에 불과했던 시절이었지요. 100살 가까운 자동차가 행사를 가득 채운 유럽과 미국의 클래식카 행사가 마냥 부러울 따름입니다.

클래식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적어도 유럽과 미국 기준을 가져온다면 우리나라에 클래식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이 먹어도 지치지 않는, 처음 공장을 빠져나왔을 때 그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올드카 정도가 남았을 뿐입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에 올드카는 힘겨운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대차 그라나다의 전신인 포드 그라나다. 1979년 출시 당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넓은 세단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현대차 4세대(EF) 쏘나타 정도 크기였습니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은 올드카를 만나기 어려운 조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기후변화가 크고 올드카에 대한 인식이 자동차 판매와 개발수준을 못 따라가는 것도 이유입니다. 몇몇 올드카 매니아만이 힘겹게 세월과의 싸움에 나서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면 정말 우리가 그토록 차를 못 만들었을까요? 수명 10년을 넘기지 못할 만큼 자동차가 약했던가요?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할 역사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클래식카는커녕 대한민국에 올드카가 남아있기 어려웠던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올드카 살생부'였습니다.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군사정부가 대한민국을 주무르던 시절, 기업은 눈치 보기에 급급했습니다. 청와대의 한마디에 기업의 운명이 엇갈릴 만큼 서슬 퍼런 정부정책에 자동차 회사가 힘없이 휘둘리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1979년 공업합리화 조치로 소형차는 현대, 중형차는 대우(새한자동차), 상용차는 기아차(기아산업) 특장차는 동아자동차(쌍용자동차)가 만들기로 했습니다.

상용차 수요가 많지 않았던 당시 기아산업은 부도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렇게 벼랑 끝으로 몰린 끝에 내놓은 차가 국내 최초의 12인승 원박스카 봉고였습니다. 결국 기아산업은 봉고신화를 이끌어내며 회생에 성공했습니다.

▲1979년 공업합리화 조치 이전까지 기아차는 소형차에서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일본 마쓰다의 기술력을 들여와 내구성과 경제성이 뛰어난 차들을 만들었지요. 기아산업 브리샤 초기 모델(사진 위)과 후속으로 등장한 K-303입니다.

그 무렵,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경기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달러가 들어왔고 대기업은 해외로 수출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준비하면서 외국 손님 맞을 준비를 하다보니 여러모로 부끄러운게 많았습니다.

그무렵 청와대에서 내려다보니 서울 종로의 공기는 여간 탁했던게 아니었습니다. 올림픽에 맞춰 외국 손님이 몰려올 판인지라 걱정이었겠지요. 원인을 찾으라니 모두가 자동차 배기가스를 가리켰습니다. 만만한 게 기업이었으니까요.

윗분께서 “배기가스 좀 줄여보라”고 넌지시 던진 한 마디에, 충성심이 하늘을 찔렀던 정부 부처는 냉큼 자동차회사를 불러다 놓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배기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거다”였지요.

자동차 회사들도 핑계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휘발유가 나빠서 배기가스가 많이 나옵니다”라며 허겁지겁 핑계를 댔습니다. 정부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 었습니다.

▲국내 첫 고유모델인 현대차 포니입니다. 4도어를 기본으로 2도어(사진)와 5도어 왜건 등으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포니를 두고 많은 이들이 해치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포니는 해치백이 아닌 '패스트백'으로 불러야 맞습니다. 트렁크가 열렸을 뿐, 뒷 유리는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번엔 정유사를 불러놓고 겁을 줬습니다.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 휘발유를 만들라는 지시였습니다.

휘발유를 연소하기 위해서는 산소와 불꽃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합니다. 잘 연소하기 위해서 옥탄수치가 높아야 합니다. 이를 높이기 위해 납성분을 휘발유에 첨가했습니다. 그러나 납성분이니 만큼 유해가스가 많이 나왔습니다.

결국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정유사들은 가솔린에서 납 성분을 뺀 이른바 납이 없는 ‘무연 휘발유’를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발맞춰 자동차회사 또한 발 빠르게 엔진을 손봤습니다. 그렇게 1987년 형(1986년 하반기부터 나온) 신차부터 단계적으로 무연 휘발유에 맞게끔 엔진을 바꿔 출고했습니다.

그 무렵 주유소에서는 “일반 넣을까요? 무연 넣을까요?”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가격은 똑같았지만 일반 차는 일반 휘발유를, 무연차는 무연 휘발유를 넣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올림픽이 끝나고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정유사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로비를 시작합니다. 어차피 무연 휘발유가 대세이니 더 이상 일반 휘발유를 생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당초 계획안에 포함됐던 의무 생산 기간(10년)보다 빠른 1991년,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는 몽땅 무연 휘발유로 통합됐습니다.

▲무연 휘발유는 일반 모델과 구분짓기 위해 연료주입구 인근에 이런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문제는 일반 휘발유차에 무연 휘발유가 독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전자식 연료분사가 하나둘 등장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캬브레터(Carburetor)’라고 불리던 구형 기화기 방식 엔진은 무연 휘발유 탓에 조금씩 수명이 줄고 있었습니다.

납성분을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옥탄가를 높이는게 아니라 정부에서 단박에 무연 휘발유로 통일했기 때문이지요.

당장에 차가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노즐을 비롯해 연료 펌프, 점화 플러그 등 연료계통이 마모되고 고장나기 시작했습니다.

납성분으로 옥탄가를 쉽게 올렸으나 이제 납 대신 다른 방법을 동원해 옥탄가를 맞추다보니 엔진과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대한민국 올드카의 살생부가 등장한 때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 대우자동차 르망, 기아산업 프라이드 등이 하나둘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 나왔던 차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죠. 당시는 요즘처럼 자동차 운전자들이 하나의 소비자 단체를 결성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국내 모터리제이션을 이끌었던 현대차 프레스토 아멕스(사진 위)와 대우차 르망입니다. 참 잘 만들었고 재미가 가득했던 친구들이지만 이제 이들을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그 무렵 애지중지하던 오랜 친구(대우 르망 GTE)를 하나 잃었습니다. 일반 휘발유차에 무연 휘발유를 꾸준히 넣다 보니 기화기 안쪽 부품들이 주저앉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폐차장을 돌면서 엔진 부품을 구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기화기를 뜯어내고 엔진 헤드를 걷어낸 다음, 안쪽 부품을 교환하는 엄청난 작업이 단순한 '자가정비'가 될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올드카는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운전 습관이 나빴거나 도로가 열악해서, 우리가 자동차를 못 만 들어서가 아닙니다.

올드카가 사라졌던 원인 가운데 연료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무연 휘발유로의 통합으로 기업은 많은 걸 얻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익과 맞바꿀 수 없는 추억을 잃었습니다.

얼마 전 경부고속도로를 점잖게 달리는 은색 포니(그것도 왜건)을 만났습니다. 가슴 찡한 감동이 밀려와 그의 뒤태를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내렸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 밀려올까요. 마치 오랜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듯 한참이나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올드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겹게 남아있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올드카가 하나둘 사라졌던 그때, 여러분은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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