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한민국, 선진국 코스프레 이젠 그만 -배수경 온라인뉴스부장

입력 2014-04-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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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先進國): 다른 나라보다 정치·경제·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 [비슷한 말] 전진국."

‘선진국’의 사전적 의미를 축약하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 인간개발지수가 높은 수준이어야 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국가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관 및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이나 발달된 국가로 분류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선진국으로 분류되지 않은 국가들은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인간개발지수에서 열두 번째에 이름을 올렸고, IMF가 분류한 35개 선진경제국과 OECD가 분류한 고소득 회원국에도 포함됐다. 또한 우리나라는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과 이코노미스트, 뉴스위크 등이 꼽은 선진국 지수에도 각각 이름을 올려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기준일 뿐 ‘선진국’이라는 용어에 대한 정의나 기준은 애매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인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이 같은 애매모호함은 지난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그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몇 명이 탔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대형 여객선이 눈앞에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응 매뉴얼도 없이 우왕좌왕 발만 동동 구르던 정부, 승객은 나 몰라라 하고 제 한 몸 살기에 급급해 혼자 탈출한 선장, 사고 수습에 여념이 없는 판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정치인들.

조선업·가전·자동차 부문에서는 세계 수위를 달리지만 우리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빵점짜리였다.

국내외에서는 이를 두고 ‘후진국형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사고 원인과 대처 방법 등이 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주목할 것은 우리가 이번 사고를 감히 ‘후진국형 사고’라고 칭할 만큼 선진국 반열에 올랐느냐는 것이다.

도시마다 들어선 빌딩 숲, 도시간 초고속 열차 운행, 서울올림픽과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 주요 20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하고 강대국 정상들 틈에 끼여 함께 사진을 찍으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착각을 해온 건 아닐까.

‘선진국 코스프레’를 해온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코스프레는 ‘의상’을 의미하는 costume과 ‘놀이’를 의미하는 play의 합성어를 줄인 일본식 표현이다. 유명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방해 그들과 똑같이 분장하고 행동을 흉내내는 놀이로 일종의 퍼포먼스에 해당한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1970년 남영호 침몰사고, 1971년 대연각 호텔 화재, 1976년 동해어선 27척 침몰사고, 1984년 한강 대홍수,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등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일어났던 참사들은 선진국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인재(人災)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대형 인명 사고를 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했다.

문제는 1970년대나 지금이나 우리 정부의 대응은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한강의 기적’, ‘한강 르네상스’ 등 단기간의 고속성장에만 집착, 내실을 소홀히 해온 한국 사회의 초라한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도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인재들을 후진국형 사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어깨에서 힘을 빼자. 선진국 코스프레를 하느라 그동안 덮어뒀던 후진국형 대응책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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