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스마트 딜링 -이은호 국제경제부장

입력 2014-04-1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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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변호사란 일을 한 족속이라면 누구나 갖춘 기본 습속이 있다. 협상할 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지만 결국은 간이고 쓸개고 쏙 빼먹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바로 그런 스마트 딜링의 전범이다. 더구나 스마트 딜링 하나로 대통령까지 오른 사람이다."

미국에서 20년 동안 국제변호사 노릇을 해 제법 그쪽 물정에 통달한 한 친구의 얘기다. 푸짐하게 살집이 잡히는 얼굴과 몸에 텁수룩한 수염, 각진 턱까지 이 친구 사실 외모에만 눈을 팔다 보면 영락없이 산적이지만 미국에 대한 지식도 얼굴과 몸에 박힌 살집만큼 풍만한 사람이므로 절대 무시 불가능한 얘기.

친구의 말마따나 오바마 대통령은 닳고 단 인간의 표징이다. 그리고 웬일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미국 대통령을 넘보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몇 년 전까지 백악관을 호령했던 그의 매력적인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도 죄다 변호사다.

최근 미국 권력이 변호사란 직업 주변에서 얼쩡거렸던 것은 절대 우연은 아닐 터. 그건 미국이 대외적으로 딜할 때 영리한 변호사 출신 리더가 절절했단 말이 아닌가 싶다.

원래 미국은 소위 초강경이란 이미지로 똘똘 뭉친 대통령을 사랑했다. 그 대표선수가 바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그는 모든 반발을 오로지 강력한 힘 하나로 우직하게 부러뜨리는 울트라 슈퍼맨이다. 미국 대통령 중에는 기업인도, 군인도, 배우도 있었지만 이런 기조는 죽 이어져 왔다. 심지어 변호사 출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대외 전략이 언제부터인가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찍어 누르는 무게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해 저항의 강도도 쑥쑥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보다 맵시 좋게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유권자들도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최근 설득력이 최대 강점인 변호사를 대통령으로 기꺼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극적 변화 때문에 미국과 소위 ‘정책적 빅딜’을 밥 먹듯 해야 하는 관련국의 리더들은 머리가 지끈 빠개질 수밖에 없다. 큰 머리, 잔머리 다 굴려도 뭐 도대체 미국 대통령의 그 우아한 기술을 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협상 경험과 자원이 부족한 신흥국이나 후진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 그 오묘한 기술과 맞서야 한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딜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끌어야 하는 박 대통령은 참말로 비운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것도 대통령 자신이므로 그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주제는 어디 쉬운가. 당장 방위비 분담 협상은 돈이 왔다갔다 하는 현안이어서 미국의 양보를 받기가 쉽지 않다. 전시작전권 이양 재연기 문제도 미국의 재정 문제 때문에 협상이 녹록지 않다. 그리고 당장 제기돼 있지는 않지만 박 대통령이 제기한 남북경제 공동체 이슈도 미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마냥 우리 손만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훌륭한 딜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자구 하나하나에 천착하는 엄밀성이다. 역대 한미 협상에서 자구 하나 신경쓰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했다가 나중에 동네방네 시끄러웠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동원 가능한 모든 전문인력을 풀가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국내나 미국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법률전문가의 검토도 거쳐야 한다.

사인하기 전에 시간도 충분히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협상장에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미국이 강력히 원하면 그냥 사인해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게 조금 밉보이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늦추면서 검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사실 지금까지 딜의 명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대북 협상에서의 빛나는 성공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협상은 상대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한쪽은 애고, 다른 쪽은 어른이다. 따라서 협상에 임하는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철저히 업그레이드해야만 미국과의 협상을 스마트하게 종지부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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