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숟가락과 젓가락…받침이 다른 이유

입력 2014-02-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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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은 받침이 시옷(ㅅ)인데 숟가락은 왜 발음은 똑같은데 받침이 디귿(ㄷ)인지 너 아니?”

“….”

“자기 국문학과잖아.”

“4학년 때 배우는 거라서 잘 몰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주연배우 고 이은주와 이병헌이 나눴던 대사다. 멜로 영화의 새 장을 열며 2001년 개봉된 이 영화는 풋풋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을 전하며 수많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10년이 훌쩍 지난 2013년 겨울 이 영화를 연극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신비로운 스토리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선율로 재탄생한 창작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당시 시공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감동을 전해줬다. 특히 영화 속 이은주가 했던 대사는 뮤지컬 배우 전미도의 입으로 옮겨지며 한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숟가락과 젓가락. 그런데 영화와 뮤지컬 속 대사처럼 ‘숟가락’과 ‘젓가락’의 표기는 참으로 묘하다. ‘숟가락’과 ‘젓가락’ 둘 다 똑같은 가락이고, 늘 한 짝으로 사용돼 ‘수저’로 일컫는데 왜 숟가락은 ‘ㄷ’받침이고, 젓가락은 ‘ㅅ’받침일까?

이 의문의 정답은 한글맞춤법 제29항에서 찾을 수 있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는 규정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원래 ‘ㄹ’ 받침을 갖고 있던 말이 다른 말과 결합하면서 ‘ㄹ’이 ‘ㄷ’으로 변하고, 그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굳어졌다면 굳이 어원을 밝히지 않고 굳어진 발음대로 적는다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 ‘반짇고리(바느질+고리)’, ‘사흗날(사흘+날)’, ‘이튿날(이틀+날)’, ‘섣부르다(설+부르다)’ 등이 해당된다.

숟가락 역시 이 규정에 따른 단어다. 숟가락은 ‘밥 한 술, 두 술…’할 때의 ‘술’과 ‘가락’이 결합된 말이다. 즉 숟가락의 원래 구조는 ‘술+가락’이다. 그런데 예부터 사람들이 ‘술가락’보다 발음하기 편하고 ‘술’을 강조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써 오면서 바른말로 정해진 것이다.

반면 ‘젓가락’은 숟가락과 다소 다른 구조로 이뤄져 있다. ‘젓가락’은 한자 ‘저(箸)’에 우리말 ‘가락’이 더해진 말이다. 그러니까 두 말을 합하면 ‘저가락’이 된다. 그런데 이를 발음할 때 [저까락 / 젇까락]으로 소리가 나므로 사이시옷 규정에 따라 사이시옷을 첨가한 단어다. ‘사이시옷’은 뒤에 오는 소리를 된소리로 만들어준다. ‘코+등’이 [코뜽]으로 소리가 나므로 ‘콧등’으로 적는 것과 같은 원리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일상생활에 가장 보편적인 도구 중 하나다.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숟가락을 내려놓다’라고 말할 정도다. 수저를 선물하는 것은 받는 사람의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고 보니 젓가락에는 식도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식사 시간 함께 자리한 동료를 위해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아 주자. 동료에 대한 배려 그 몇 배의 복이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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