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영 한국SR전략연구소장ㆍ배재대 겸임교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도 커뮤니케이션을 핵심으로 한다. 동반성장, 윤리경영, 지구환경 보전, 사회공헌 등 CSR 활동을 표현하는 수많은 이름을 떠올리면 기업과 소비자가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위기국면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거기서 실패는 결정적으로 존립 기반을 흔들기도 한다.
최근 눈에 띄는 사례는 코오롱그룹에서 볼 수 있다. 지난 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 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는 코오롱그룹으로선 리스크(Risk)를 뛰어넘어 크라이시스(Crisis) 단계에 해당한다. 당시 코오롱그룹의 선택은 회장의 직접 사과였다. 사고 발생 몇 시간 만인 18일 오전 5시30분 사고현장에 내려온 이웅열 회장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문을 읽었다. 이 회장은 “국민께 심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원하는 피해 보상을 하겠다”며 현장에서 수습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사고 발행 3일 만에 일부 유족과 장례 및 보상에 대한 합의를 신속히 마쳤다.
당시 많은 언론은 재벌 총수의 신속한 사과를 보며 기업이 달라졌다고 했다. ‘달라졌다’는 표현에는 이전의 수많은 실패가 겹쳐 있다. 1억 건이 넘는 고객정보 유출로 궁지에 몰렸던 카드 3사 임원진은 지난 1월 일제히 사표를 제출했다. 그들 중 실제로 회사를 떠난 사람은 몇 명일까. 대부분 “수습이 먼저”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헬기 추락사고 직후 한 전자회사는 ‘임직원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다. 사과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의 구체적 상황도 없고 ‘죄송’, ‘애도’, ‘사과’라는 단어가 파편처럼 떠다녔다. 사고로 놀란 국민들은 그 회사의 소비자 혹은 잠재적 소비자인데 사과를 제대로 받았다는 느낌을 갖기 어려웠다.
기업에 천재지변과 인재가 뒤엉킨 사고는 늘 일어날 수 있다. 남양유업처럼 대리점 영업직원의 폭언과 밀어내기 관행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늘 해 오던 대로 했을 뿐인데 새삼 문제가 됐다’고 억울해한 기업일수록 악화일로를 걸었다. 평소 잘하던 기업도 위기국면에선 취약점을 노출한다. CSR 활동을 잘해 왔다고 인정받는 기업일수록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의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 벤&제리(Ben & Jerry’s)가 얼마 전 소비자보호단체로부터 ‘내추럴’(Natural·천연)이란 단어 사용과 관련해 소송을 당했다. ‘건강에 좋은’(healthful)이란 의미로 오해될 수 있으니 다른 표현을 사용하라는 게 골자였다. 벤&제리는 함께 소송을 당한 크래프트(Kraft), 펩시(Pepsi)보다 훨씬 가혹한 비판에 직면했다. CSR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온 유니레버의 계열사, GMO(유전자변형 농산물) 표시제를 옹호하는 대표적 친환경 기업으로 평판이 높았던 탓이다. 당연히 더 높은 윤리 수준과 정직성, 투명성을 기대했는데 그에 못 미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위기국면에서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챙겨 보고, 전담조직도 호출한다. 이런 게 아예 없다면 서둘러 만든다. 그러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과거의 경험은 기억 너머로 사라진다. CSR를 경영의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는, 그래서 기업 평판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는 상당수 기업들에서 늘상 봐온 일이다.
사실 CSR는 위기관리의 중요한 축이다. CSR를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고 한 것처럼 위기관리 국면에서 의사결정 구조는 CSR를 채택하고 실천하는 구조와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에서 일관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소셜미디어가 강한 전파력을 갖는 시대엔 위기대응이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핵심을 비켜갈수록 리스크는 크라이시스로 확대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것만큼이나 CSR와 위기관리에도 많은 역량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그게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