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기내 카트 끌기부터 실수, 온몸에 '식은땀'

입력 2014-01-1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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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승무원 교육… ‘한치의 오차 없는 안락함’ 그들의 노력 느껴

▲산업부 하유미 기자가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 교육동에서 승무원 기내서비스 체험을 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오늘 A기업 주가가 어떻게 되지?”, “기업 B가 얼마 전 사업 확장을 했던데, 그 외 특이사항은 뭐지?”

이 같은 변화에 늘 주시해야 하는 직업으로 기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대상자가 대한민국 여성이면 한 번쯤 꿈꾸는 ‘스튜어디스’라면 믿을까.

승무원들은 A기업 임원이 탑승자 명단에 있으면 호칭을 정확히 부르기 위해 최근 승진 여부를 꼭 확인한다. 심지어 A사의 주가 흐름을 비롯해 기업 관련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그날 비행기에 오르는 손님 수백 명의 정보는 기본이다.

서비스 정신은 물론 지성과 주도면밀함, 정보력까지 갖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의 일상를 체험해봤다. 이들 업무가 단순히 ‘비행기 서비스’가 모두라고 알고 있는 우리의 지식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비행보다는 ‘준비 과정’이 더 중요해= 체험 전날 밤부터 기자는 이미 승무원이었다. 비행 전날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승무원의 생활 패턴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다. 전날부터 머리가 복잡하다. 해당 노선과 담당 구간 탑승객에 대한 정보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손님이 몇 명인지, 가족은 몇 팀이 가는지, 이들은 각각 자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등 아주 구체적인 사안까지도 머릿속에 들어있어야 한다. 이 정보를 기반으로 중점적으로 서비스해야 하는 구간, 상대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구간 등을 미리 파악하고 그림을 그려놓는다. 담당 구간 내 VVIP 고객이라도 있다면 그날 잠은 다 잤다.

드디어 비행 당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승무원으로 거듭나야 했다. 우선 메이크업은 ‘눈의 생명’ 아이라이너를 포기해야 한다. 화려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이란다. ‘부풀린 머리’도 안 된다. 포마드 기름을 발라 놓은 듯한 조선시대 올림머리와 같이 잔머리 한 가닥, 개미 한 마리 들어갈 틈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승무원의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은 예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손님에게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유니폼까지 갖춰 입으니 제법 승무원 같다. 이미지 메이킹 룸에서 한 번 더 차림새를 체크한 후 브리핑 룸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함께 비행할 승무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비행 관련 모든 준비사항이 담겨 있는 빨간 매뉴얼을 편다.

“기종별 비상 장비와 구급약품상자 위치는 아시죠?”,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들이 많은데 몇 명인지 다 파악하고 있죠?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매니저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전날 밤잠 설치며 공부했던 노선별 특징, 안전 사항, 장비 위치, 손님 특이사항, 구간별 유의점 등을 선후배들과 다시 나누며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선배들이 경험을 토대로 해주는 조언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드디어 폼나는 캐리어를 끌고 나갈 시간이 됐다.

◇A부터 Z까지 매 순간 긴장 속의 기내 서비스= ‘가족 5명이 탔는데 한 명이 자리가 떨어져 있네?’, ‘A기업 주가가 떨어졌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서도 승무원들은 끊임없이 손님들을 파악했다. 자칫 손님의 여행길, 출장 길에 누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벌써 인천공항 도착이다. 그러나 기자의 실제 경험은 여기까지. 비행을 하려면 법적으로 승무원 교육을 3개월(국제선 기준)가량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향한 곳은 아시아나항공 캐빈서비스훈련팀의 승무원 체험 교육장. 교육팀에서는 베테랑급 승무원 교관단이 이미지 연출, 워킹부터 실제 기내식 서비스까지 꼼꼼히 가르치고 있었다. 기자는 그 중 기내 서비스 체험에 참여했다.

아시아나항공 본사 교육동에는 비행기 모형이 여러 개 있다. 모형은 실제 비행기와 똑같아 마치 비행기에 오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비행기(B747) 동체 모형에 여객기의 좌석, 화장실까지 모두 뜯어 장착했기 때문이다.

이륙 직전부터 그 이후까지 실제 기내 상황과 똑같이 모든 서비스가 재연됐다. 각자 맡은 구역의 비상 장비와 특이사항을 클래스(트래블·비즈니스·퍼스트)별로 모두 체크한다. 이후에는 비행기의 부엌이라 불리는 ‘갤리’에서 필요한 음식 양과 종류를 확인해 본다. 이때 승무원이 메니저에게 소리친다. “오늘 손님 명단에 가족과 아이들이 많습니다. 양을 좀더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남아도 좋으니 부족하게 싣지 말고 아낌없이 제공하자는 의미다.

음료는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고 기내식은 카트에 담기 직전 메인 요리만 오븐에서 데운다. 히팅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셔플링을 통해 위치를 바꿔 주며 아래부터 위까지 동일하게 뜨겁게 만든다. 음식이 담긴 쟁반 42개를 카트에 넣었다. 지금부터 기내식 서비스 시작이다.

서비스에도 순서와 법칙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 먼 창가부터 기내식을 제공하며 그릇을 치울 때는 반대로 바깥쪽부터 시작한다. 통로 좌석은 ‘안쪽·바깥쪽’부터 시작하지만 노약자와 여성을 우선시하는 등 상황에 맞게 이뤄진다.

“만약 담당구역이 아니더라도 일행일 경우 모두에게 한 사람이 서비스한다”고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설명한다. 이는 곧 보딩 시 이미 전 좌석 손님을 모두 파악하고 확인했다는 의미다. 만약 일행 중 한 명이 떨어져 앉아 있을 경우 최대한 가깝게 자리 조정도 해준다. 손님들은 이 정도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우선 음료수부터 제공한다. 카트를 끄는 것부터 실수 연발이었다. 빨간 페달을 누르고 멈추게 해야 하는데 초록 페달을 밟아 저 멀리까지 가 버렸다. 카트 위치도 상당히 중요했다. 좌석과 좌석 사이에 정확히 세워야 한다. 손님 고개가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내가 서비스할 공간까지 확보해야 하는 ‘정확성’도 필요했다.

몸을 15도 정도 구부린 채 하나하나 음료를 소개한다. 자칫 음료가 튈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조금 구부려 캔을 따야 한다. 컵은 뒷부분을 아래 3분의 1만 잡고 70% 정도 따른다. 또 지적을 당했다. 앞받침을 내리지도 않고 바로 손님에게 음료수를 건넸기 때문이다.

벌써 식은땀이 흐른다. 이제 음료수 한 번 서비스했을 뿐인데, 앞으로 수백명의 식사를 서비스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니.

승무원 체험을 마치고 나니 편안하게 서비스를 받을 때와 달리 초긴장 상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극과 극’ 체험을 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기내에서 별생각 없이 받았던 서비스들을 되돌아보니 “승무원들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사람의 여행에 안락함을 제공했구나”라는 깨달음도 있었다. 그들의 눈빛, 태도, 말투, 표정을 비롯해 서비스 동선, 순서 등은 모두 오랜 기간 준비하고 쌓아온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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