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무수히 수출 신화를 써왔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많은 업종에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해외시장을 뚫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분야도 있었다. 문화산업이다. 소설, 가요, 드라마처럼 우리말이 원료인 문화산업은 콘텐츠 수준뿐만 아니라 언어장벽과 감수성의 차이란 장벽에 막혀 해외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가수 싸이가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한 이후 외국인이 한국 가요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한류란 이름의 한국 문화상품이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을 받으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창의성이 자본과 결합하면서 빛을 발한 것이다.
반대로 싹수가 있었지만, 여전히 골목대장에 머물고 있는 쪽도 있다. 금융이다. 은행 등 금융업엔 늘 인재들이 몰린다. 관련 부처인 금융위 등 구 재무부 라인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빵빵하다.
그러나 한국 금융기업의 국제적 순위는 70~80위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인 전체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턱없이 뒤진다. 거대한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못하고 안방 시장에 매달린 결과다. 경쟁력 평가기관인 IMD에 따르면 한국 금융의 경쟁력도 지난해 28위로, 3계단 떨어졌다. 당국이 규제 만능주의에 함몰돼 살려 나가야 할 똑똑한 규제와 도태시켜야 할 규제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회견에서 밝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까칠한 평가를 받고 있다. 집권 2년차 핵심 구상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목표는 앞으로 3년 동안 국민소득 4만 달러, 고용률 70%, 잠재성장률 4%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달까지 구체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그 준비과정부터 날림이 될 소지가 있는데다 달성할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에 봉착했다.
그래도 기대를 걸고 싶은 대목이 있다. 개혁과 혁신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에서 개혁(7회)과 혁신(5회)을 거듭 강조했다. 또 내수를 살리기 위해 규제총량제를 도입하고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경제 민주화와 복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증세에 대해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게 먼저”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런 점에서 신년회견은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로의 귀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좌클릭’을 했던 2012년 대선공약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2007년부터 사용한 줄푸세로 회귀하며 ‘우클릭’하겠다는 조용한 외침이었던 셈이다.
규제개혁은 돈을 들이지 않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다. 좋은 규제는 지키되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고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나쁜 규제를 혼내주면 정부의 군살을 빼고 시장도 넓어진다.
역대 정권 모두 규제개혁을 추진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규제왕국이다. 그만큼 난제다. 규제를 혁파해야 하는 정부 자신이 규제의 ‘대마왕’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처럼 2012년 기준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9위인 데 비해 정부 규제 부담 순위가 117위로 최하위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박근혜 정부라고 쉬울 리 없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요즘 적자생존이 우스개로 쓰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철도파업에서 목도했듯 대통령의 말을 초등학생처럼 열심히 필기하지만 정작 응용력과 실천력은 떨어지는 고위 공직자를 비꼬는 농이다.
정부는 원격진료를 허용하기로 하는 등 서비스산업의 규제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서비스업, 특히 고도의 전문직이 포진하고 있는 의료 법률 시장 등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꼽히고 있지만 폭탄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이해관계가 민감하다. 의사협회가 진료거부 시점을 3월로 늦추면서 파업 추진력이 둔화됐다. 그래도 공직자의 적자생존식 분위기로는 위태롭기 짝이 없다. 정부와 공직사회에도 혁신과 개혁의 바람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