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2분에 한 집꼴로 택배 배송…입에서 단내가 났다

입력 2013-11-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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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가산택배터미널…온 몸으로 느낀 생업전선

▲본지 장효진 기자가 지난 6일 서울 금천구 CJ대한통운 가산택배터미널에서 20kg 소금 한 포대를 배송 차량에 싣고 택배 박스 주소지를 확인한 후 남현동 일대의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배달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어이쿠!” 막노동으로 용돈벌이를 하던 대학 시절 이후 15년 만에 온몸으로 전해진 긴장감이다. 눈앞에선 손바닥 만한 것부터 양팔로 힘껏 들어올려야 될 법한 온갖 크기의 택배 상자들이 ‘벨트컨베이어’ 위로 쉼없이 이동한다. 용맹스럽게 돌진해 오는 20kg짜리 소금 한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자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택배 현장체험의 시작이다.

지난 6일 오전 9시. 오랜만에 ‘지옥철’을 경험했다. 통상 석간신문 기자의 일과는 오전 6시경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붐비지 않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지만 이날만은 아니었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CJ대한통운 가산택배터미널(이하 가산터미널)에 도착했다. 가산터미널은 최신 시설을 갖춘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연면적 4만6280m²)의 대형 물류센터로 지난 2009년 완공됐다. 이곳에서는 관악구와 구로구의 택배 물량을 담당한다. 일일 처리 물량은 배송(4만개)과 집하(6만개)를 포함해 총 10만개에 달한다.

▲CJ대한통운 가산터미널은 일일 10만개의 배송·집하 물량을 처리한다. 지하 1층에 있는 상차장에서 관악구(봉천동, 신림동, 남현동 등)지역 담당 택배 배송기사들이 상자를 분류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먼 지역 짐은 안쪽부터, 무거운 건 아래로= 가산터미널 1층에는 대전 문평동 메인 허브터미널에서 밤샘 분류 작업을 거쳐 ‘상경(上京)’한 물건들이 쏟아진다.

“새벽에 대전에서 올라온 물건들이 모두 이곳에 하차되고, 지하로 연결된 레일을 따라 각 가정에 배달될 상차(上車)장으로 옮겨집니다.” 이동수 CJ대한통운 부장의 설명을 듣고, 곧장 지하 1층으로 향했다.

“봉천동!”, “신림동!”, “여보세요. 택배 기사입니다. 번지가 없어서 확인하려고….”

말 그대로 ‘생업 전선’이다. 약 80m 길이의 벨트 컨베이어 양쪽에 줄지어 선 택배 배송기사 수십 명의 입과 귀, 손놀림이 매우 바쁘다. 오늘 하루 동행하게 될 김기환(31·가명)씨는 “오후 7~8시 배송을 끝내려면 오전에 모두 적재한 뒤 정오께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손을 좀 덜어줄 생각에 벨트 컨베이어 앞에 섰다. 주소도 확인하기 전 순식간에 상자들이 들어친다. 초보에겐 무리인가 싶어 조금 더 단순해 보이는 ‘적재’를 하기로 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씨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동선에 따라서 먼 곳은 가장 안쪽부터 싣고, 무거운 짐은 아래에 둬야 해요. 하나라도 틀리면 오늘 배송 못 끝냅니다.”

결국 벨트 컨베이어와 배송 차량을 오가며 단순히 몸 쓰는 일만 했다. 여름은 한참 전에 지나갔지만 땀은 계절을 모르고 계속 흘렀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점심은 굶어야 해요”, “설마요”= 11시 30분께 상차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운송장을 등록했다. 이후 전산으로 고객에게 일괄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것을 확인한 김씨는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1톤 탑차에 올라 한숨 돌리는 사이 “점심은 굶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죠?”라는 날벼락 같은 말이 들렸다. 놀란 눈을 한 기자에게 김씨는 “일상이에요”라고 말했다.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오늘 남현동 일대에서 처리해야 할 물량은 240개. 오후 7시 배송 업무를 종료해야 하니 한 시간에 40개를 날라야 한다. 한 번에 여러 개의 물건을 배송하는 사무실 등을 고려해도 2분에 한 집꼴로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배송뿐만 아니라 집하도 동시에 이뤄지는 만큼 제대로 된 점심식사는 아예 기대할 수 없다.

가뜩이나 촌각을 다투는 일인데, 출발하자마자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이른바 ‘멘붕’이 왔다. 동선상 ‘거리가 있고, 무거운’ 소금 세 포대를 받을 고객에게서 집 주소가 바뀌었다는 연락이 온 것. 게다가 바뀐 주소지는 담당구역도 아니다.

김씨의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이 없다. 김씨는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 그려놓은 동선을 다시 짠 뒤 “지금 갈 테니 꼭 집에 계시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럴 경우 순서대로 쌓은 물건이 뒤집히고, 시간도 상당히 지체된다. 얼른 소금을 내려놓고 다음 장소를 향했다.

이번엔 주소지가 잘못됐다. 사람도 없다. 송장에 적힌 번호로 물건 주인과 통화한 후에야 전달할 수 있었다. 다음 장소에 배송할 물건은 사과와 감자 세 박스. 오래된 단독주택 2층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낑낑대며 올라가자 주인이 머쓱했던지 나머지 한 상자를 들고 올라가기도 했다. ‘참 고마운 분이다.’

좁은 골목길을 주로 다니다 보니 통행도 신경 써야 했다. 정차를 잘못하면 어김없이 경적이 울리고, 주민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다.

김씨는 “매일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매번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며 “택배 기사가 많아지면 그만큼 여유가 생기고,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최대한 서비스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정부에서 택배 증차를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안다”며 “주변 환경이 택배산업을 3D 업종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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