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대디’ 열풍 빈틈없이 꼼꼼하지만 지나친 간섭도… 선수와 궁합 잘맞는 캐디 선택 중요
199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연출된 박세리(36·KDB산은금융)의 ‘맨발샷’은 수많은 세리키즈를 탄생시켰다.
올 시즌 25개 대회 중 10개 대회를 한국선수가 휩쓸 정도로 LPGA투어는 이제 한국선수들의 독무대가 됐다. 가족의 헌신적 노력과 체계적 훈련, 그리고 선수 개개인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특히 가족의 헌신적 노력은 미국 현지에서도 한국 골프 발전의 원동력으로 손꼽고 있다. 유응열 SBS골프 해설위원은 “‘골프 대디’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박세리로 시작된 ‘골프 대디’는 김미현, 박지은, 장정, 최나연에 이르기까지 한국 골프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최운정(23·볼빅)은 “처음 LPGA에 데뷔했을 때 아빠는 캐디이자 운전기사이자 매니저였다”며 “어렵고 힘들 때도 아빠의 위로를 받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빠 캐디보다 전문캐디를 선호하는 선수들이 크게 늘었다. 아빠 캐디들의 건강상 문제와 선수들의 스트레스, ‘골프 대디’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이유다. 열정적인 부모의 모습보다 지나치게 극성맞다는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 씨도 최근 한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올해는 전문캐디 영입으로 재미를 본 선수들이 많다.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한 양수진(22·정관장)은 LPGA투어 전문캐디로 활약한 송영군 크라우닝 이사를 캐디로 영입했고, 올해 3승을 올리며 상금랭킹 1위에 올라선 김세영(22·미래에셋)은 KPGA 세미프로 정상옥 씨와 계약했다. 이미림(23·우리투자증권)은 지난 5월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캐디 최희창 씨의 조언을 받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PGA 마스터 프로 나경우 씨는 “한국골프가 자연스럽게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가족이 대신 백을 매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도 톱 프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친구나 주변사람들이 캐디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전문 캐디는 주급 1000달러 수준으로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별도로 받는다. 이들은 단순히 백을 매고 클럽을 챙겨주는 역할을 넘어 선수들의 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라우닝 송영군 이사는 “선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캐디의 역할이다. 경기 전 코스를 꼼꼼히 점검하는 등 선수가 불안감 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전문캐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전문캐디에 대한 생각은 반신반의다. 2006년 KB국민은행 스타투어 2차전에서 우승한 문수영(29)은 “아빠 캐디든 전문캐디든 장·점단이 있다. 아빠는 내 일처럼 꼼꼼하게 봐주기 때문에 언제나 빈틈이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 간섭이 도를 넘을 때도 많다”고 지적했다.
문 프로는 또 “반면 전문캐디는 기계적이다. 자신이 받는 만큼만 한다는 생각이 대부분인 것 같다. 따라서 눈치 빠르고 똑똑한 캐디를 영입하는 것이 좋지만 그런 사람은 인기가 좋아 몸값이 비싸다. 결국 자신과 궁합이 맞는 캐디를 고용하는 것이 후회없는 선택”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