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경영·위기대응에 투자도 과감하게…하롱베이 등 발로 뛰며 하늘 길 개척
‘엑설런스 인 플라이트(Excellence in flight)’.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04년 대한항공 창립 35주년을 맞아 선포한 비전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누구에게나 노랫말처럼 익숙하다는 것은 조 회장의 예지력과 실천력이 그대로 입증되는 대목이다.
1974년 대한항공 과장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그는 항공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지 30년 만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40여년간 한 우물만 파며 전문지식을 쌓아온 그룹 총수가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그만큼 조 회장의 전문성과 그에 따른 자신감 자체가 바로 ‘한진그룹의 리더십’이다.
실제로 조 회장은 한진그룹 회장 취임 당시 조중훈 선대 회장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창업정신을 이어 받아 미래 10년을 내다보며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그룹의 위상을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한층 강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 특유의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과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는 ‘혁신의 리더십’이라는 대명사를 낳았다.
◇‘내실경영·판단력’에 ‘과감한 투자’ 3박자=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조 회장의 위기경영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그야말로 한진그룹이 유례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영을 지속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대한항공이 운영하던 112대의 항공기 중 대부분이 자체 소유였던 덕분에 매각을 통한 유동성 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항공기 임차보다는 구매 투자에 집중했던 조 회장의 판단이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위기에 몰린 세계 항공시장에서도 조 회장은 굴하지 않고 또 한 번 과감한 투자에 힘을 실었다. 위기를 오히려 투자의 호기로 받아들이며 ‘하늘 위 호텔’로 불리는 초대형 항공기 A380 5대를 주문하며 판매 물꼬를 터 주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IMF 위기 직후 기업들이 모두 힘겨워했던 상황에서 조 회장은 오히려 과감하게 항공기 도입을 결정했다”며 “지금에 와서 보니 그의 경제 회복과 여행 수요 증가 예측은 정확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예상처럼 세계 항공시장은 2006년부터 회복 조짐을 보이며 항공사들이 앞다퉈 항공기를 주문하기 시작, 항공기 제작사가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 회장식 혁신 키워드의 또 다른 성과는 항공화물 부문이다. 그는 △최고의 운송 서비스 △기종 단일화 △적극적 해외시장 개척 등을 통해 정확한 시장 수요 분석과 과감한 정책 결정을 주문했고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국제 항공화물 수송 부문에서 6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발로 뛰는 현장경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1997년 조 회장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사를 서울에서 김포공항 인근으로 옮겼다. 직원들은 항공기가 있는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현장’을 중요시하는 그의 가치관이 실천으로 옮겨진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직원뿐 아니라 임원들에게도 ‘현장 경영’을 주문한다. 실제로 그는 업무보고 시간에 임원들에게 “현장에 몇 번 가봤어요?”라고 질문하기로 유명하다. 조 회장의 이 같은 현장 경영은 대한항공의 ‘절대 안전’을 담보하는 지침이 되고 있다.
그는 취항지를 결정할 때도 직접 사전 답사에 나선다. 일례로 베트남 하롱베이, 터키 이스탄불은 조 회장이 발로 뛰며 하늘 길을 개척한 곳이다. 그는 작은 도시 한 곳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조 회장은 현장 경영에 앞서 경영의 기본은 사람이라는 판단 아래 직원 교육에도 아낌 없이 투자한다. 2000년대 들어 9·11 테러, 이라크전, 사스 등 계속되는 항공업계의 시련 속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급 MBA 수준의 임원 경영능력 향상 프로그램(KEDP)을 서울대에 위탁·개설했다. 신규 임원 전원이 동시에 4개월간 회사 업무를 떠나 교육을 받도록 한 국내 대기업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업무에는 베테랑이지만 최신 경영 이론에는 취약한 임원들에게 다변화하는 기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미래 경영자의 자질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글로벌 리더십’= 조 회장이 국제 항공전문가로서 식견과 리더십을 보여준 사례는 ‘스카이팀’ 창설이 대표적이다.
일찍부터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실무지식을 보유한 조 회장은 1990년대 후반 세계 항공업계가 동맹체로 재편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읽은 것.
유나이티드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이 각각 항공동맹체 ‘스타 얼라이언스’와 ‘원월드’를 만들자 조 회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회장에게 스카이팀 창설을 직접 제의하게 된다. 결국 2000년 6월 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등 4개 항공사가 모여 스카이팀이 창설됐다. 지금은 19개 회원사를 거느리며 178개국 1024개 도시로 일일 약 1만5200편의 항공편을 운항하는 거대 항공 동맹체로 성장했으며 조 회장은 회원사 회장단 중 가장 식견이 넓은 항공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조 회장의 글로벌 리더십은 스포츠에서도 강하게 묻어난다.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유치 성공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 주인공이다.
50번에 걸쳐 해외 출장길에 오르며 IOC 위원 110명 중 100여명을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평가단과 버스에 동승해 “나는 오늘 평창까지 가는 버스의 수석 사무장으로, 가시는 동안 편히 모시겠으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달라”고 해 평가단으로부터 웃음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 외에도 조 회장은 ‘2012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개발도상국 복싱 선수들을 전격 지원하기도 했다. 그 결과 남자탁구 단체팀은 은메달, 여자탁구 대표팀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조 회장은 지난 5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총회에서 재무 및 마케팅 부문 특별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지난 6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69차 국제항공수송협회(IATA) 연차총회에서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