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정비사 참여…나사 정확히 조이는데 1시간 땀 뻘뻘
영화‘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대한항공 부산 테크센터에 위치한 5000평 남짓의 격납고(2-Bay Hangar)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풍경이다. 대형 항공기가 2대나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곳에서 기자 최초로 1일 정비사가 돼 보기로 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기자가 방문한 9월 25일은 10년마다 돌아오는 비행기 랜딩기어(착륙장치) 교체일이었다.
◇나사 하나에 비행기가 무릎 꿇을 수 있다니 = “바퀴를 랜딩기어 브레이크에 장착하는 작업부터 할까요?”
기자가 가장 먼저 투입된 곳은 ‘B747-400 화물기’ 바퀴 장착 파트. 항공사는 10년이 되기 전 무조건 랜딩기어를 교체해야 한다. 비행기 한 대당 랜딩기어는 5개로 그에 딸린 바퀴만 모두 18개다. 모든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직원들이 매일 8시간을 꼬박 일해도 5일이 걸린다는 소리에 기자는 “내가 작업 시간을 줄여주마!” 큰 소리쳤지만 모르는 자가 그저 용감했을 뿐이었다.
노후 랜딩기어 교체 시 브레이크는 기존 랜딩기어에서 떼어내 재사용이 가능하다. 새 랜딩기어에 기존 브레이크를 붙이고 그 옆에 새 바퀴를 장착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바퀴를 원통 모양의 브레이크를 감싸도록 밀어넣는 작업이 관건이다. 브레이크 겉부분에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가 있는 틈과 바퀴 안쪽에 튀어나온 부분을 모두 정확히 맞춰야 한다. 말은 쉬웠지만, 이내 비닐장갑에 천장갑까지 낀 손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땀이 마를 틈도 없이 바퀴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나사 고정 작업이 진행됐다. 정밀공구인 ‘도큐렌치’가 필수품이다. 도큐렌치는 힘과 길이를 곱해 정확한 힘을 계산한 후 일정한 힘을 가해 나사를 조일 수 있는 공구다. 도큐렌치를 이용해 나사를 정확한 위치까지 조여주면 ‘딸깍’소리가 난다. 아마추어인 기자가 그 ‘반가운’ 소리를 듣기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린 듯하다.
조경락 기체정비팀장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져왔다.
20년 이상 한 우물만 판 베테랑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는 그 무언가가 기자 눈에 쉽게 보일 리 없다. 랜딩기어를 접고, 펴는 연결장치 한가운데 끼워져 있는 ‘기어 그라운드 핀’이라 불리는 검정색 나사였다. 조 팀장은 “이 핀 1개를 빼버리면 비행기가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핀은 랜딩기어가 접히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것으로 이것을 빼는 순간 비행기를 지탱하고 있는 바퀴 한 쪽이 올라가면서 비행기가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이다. 조종사는 이륙 전 반드시 5개의 핀이 빠져 있는지 확인해야 하므로 정비사들은 조종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핀들을 진열해 둔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이때 갑자기 바퀴까지 완벽히 장착된 새 랜딩기어가 있는 바닥 부분이 ‘철커덩’ 아래로 꺼지기 시작했다. 랜딩기어가 아래로 잘 펴질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기 위한 작업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장치라고 한다. 하긴, 300~400톤에 달하는 비행기를 반대로 무작정 들어올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작업복, 안전모, 장갑, 안전화도 모자라 귀마개까지 갖춘 기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날개를 향해 올라갔다. 이번 작업은 연료보관장치 점검. 처음 안 사실이지만, 연료보관장치는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날개에 있다고 한다.
기나긴 날개 한쪽 아래 부분에는 ‘맨홀 뚜껑’이라 불리는 구멍이 무려 33개나 있다. 모두 열려 있었다. 점검을 위해 배유작업을 마친 구멍에 공기를 불어넣고 이틀간 숨통을 틔어주고 있는 것이다. 환기가 끝나면 기름 냄새 제대로 맡으며 목을 쑤욱 집어 넣어 점검을 한다. 육안으로 부족하면 거울과 조명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작업이 끝나면 다시 이 뚜껑들을 모두 닫아줘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뚜껑 하나에는 무려 20개의 나사가 있으며 나사를 조여주는 순서도 다 정해져 있다.
“첨에 손으로 나사를 살짝 돌려주시고요, 그 뒤에 스피드 핸들로 초기 조임 작업을 해주신 후, 도큐렌치로 3단계 걸쳐 일정한 힘으로 마무리해야 해요”라는 정비사의 설명에 힘이 쫙 빠졌다. 뚜껑 하나 닫는 일일 뿐인데…. 잠시 기지개를 켜려고 천장을 보니 와이어에 정비사 한 명이 서커스하듯 매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천장 구조물을 이용해 늘어뜨린 줄과 몸에 착용한 안전밸트를 연결시켜 날개 위에서 정비작업을 하는 모습이었다. 늘어진 줄은 안전사고 방지 차원에서 마련된 장치였다.
격납고에 이어 테크센터 매출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민항기 제조공장도 슬쩍 둘러봤다. 보잉 구조물 생산 라인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플래시를 들고 B747 후방동체 부분을 너무나도 꼼꼼히 관찰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이 작업에 뛰어들었지만 1초도 안돼 후회했다. 페인팅 작업 완성도를 점검하는 과정으로 먼지 하나, 기포 하나라도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일일이 칼로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1㎜의 스크레치도 용납되지 않는 완벽한 작업을 하기까지 수시간이 걸렸다. 유리 거울같이 반짝 빛이 나기 전까지는 절대 납품되지 않을 것 같았다.
작업복을 벗고 고된 시련을 겪었던 테크센터를 나서며 혼잣말을 했다. “비행기는 알고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