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재계 마당발]월급 깎여도 회사 다니겠다는데

입력 2013-09-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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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근무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많이 고마웠습니다.”

명절을 코앞에 둔 지난주 월요일, 평소 알고 지내던 모 기업 임원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얼마 전까지 회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짜내며 팀원들과 밤잠을 줄여가던 그는 3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사람이었다. 느닷없는 인사이긴 하나 ‘기업 임원’이라면 언제든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모였을 법한 명절 기간 중 씁쓸한 뉴스도 날아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설문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의 70%가 “회사를 더 다닐 수 있다면 월급이 줄어도 좋다”는 데 공감했다.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가 서로 연계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 셈이다. 정년 60세 연장이 도입되면 자연스레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근로자 역시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화이트 칼라’였다.

임금을 줄이면 10~20%가 적당하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정년에 민감한 50대 이상 근로자(81%)들이 가장 많았다. 임금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는 의미다.

나아가 연차가 낮은 직장 상사 밑에서 근무할 수 있느냐는 대답에도 60.1%가 “관계없다”고 답했다. 설문 결과 속에는 “현재의 직장을 최대한 다녀야 한다”는 처연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 근로자들은 이렇게 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불확실성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30~40대의 업무 기여도가 가장 높다는 설문 결과도 이런 사회 분위기의 배경이 된다. 이들이 임금 대비 회사 업무에 대한 기여도가 가장 높은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업무기여도를 묻는 설문에서 30대(48.7%), 40대(43.8%)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50대와 20대는 각각 5.6%, 1.9%에 불과하다. 회사를, 나아가 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장년층의 설 자리는 이렇게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모 기업 노조는 올해 임단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며 자축하고 있다. 임단협 잠정합의안의 최종 투표를 앞두고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1인당 2879만원의 인상 효과가 있다”며 가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들은 정년연장은 물론 호봉에 따른 승급을 포함해 기본급을 인상했다. 사업목표 달성 장려금 300만원, 주간 2교대제 정착 특별합의 명목으로 통상급의 100% 지급, 통상급의 50%+50만원에 이르는 품질향상 장려금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버겁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이 자신보다 더 나은 길을 가길 원한다. 그러나 이 회사 조합원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가도 불만이 없다. 조합원 자녀에게 취업 가산점을 부과하도록 단협에 포함한 내용이 그렇다. 언젠가부터 일부 노조 앞에 붙은 ‘귀족’이라는 수식어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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