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우리는 모두 불타는 플랫폼에 서있다

입력 2013-09-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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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

지난 2011년 스티븐 엘롭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휴를 맺기 며칠 전 사내 메모를 통해 한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온 것은 2007년인데 노키아는 그때까지 비슷한 제품도 내놓지 못하자 절박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이 발언이 있은 지 며칠 뒤 노키아와 MS는 윈도 운영체제(OS)에 기반한 노키아의 스마트폰을 공동 개발키로 하고 손을 잡았다. 불타는 플랫폼에 나란히 서 있던 두 회사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MS가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본격적으로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며칠 전, 막상 핀란드의 자존심인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이 MS에 팔리자 핀란드는 국상(國喪) 분위기다. 핀란드 경제장관은 “핀란드에서 한시대의 막이 내렸다”며 “이번 사건이 핀란드 국민에게도 정신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48년간 위기 때마다 사업 전환으로 극복해온 국민기업 노키아가 끝내 재기하지 못한 것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1865년 제지 펄프회사로 출발한 노키아는 20세기에 들어서자 고무제품을 만들었고, 1967년에는 군용 무선전화기를 개발한 피니쉬 케이블 웍스와 합병, 1980년대 초에 휴대전화 분야에 진출해 업계의 선구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승승장구하다가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TV 공장을 인수하면서 노키아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이후 1992년 취임한 요르마 올릴라 CEO가 사업을 통신분야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노키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졌다. 현재 MS에 휴대전화 사업을 넘기고 보니 수중에 남은 건 산하의 노키아 솔루션즈 앤드 네트워크(NSN)뿐이다.

MS 역시 한때 컴퓨터의 기본 OS로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지만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PC시장을 잠식하면서 수세에 몰린 상태다.

노키아와 MS 진영은 ‘iOS’와 ‘안드로이드’로 양분된 OS 시장에 비집고 들어와 패자부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두 기업의 만남이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하락일로인 가운데 MS에도 실적 개선 재료는 없어 보인다. 심지어 선전한 태블릿PC ‘서피스’와 관련해서도 9억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 MS가 애플이나 안드로이드를 대신할 제품을 개발하지 못할 경우에도 상황은 비참해진다.

노키아와 MS의 경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모두가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는 것이다.

정보기술(IT) 시장은 이미 앨빈 토플러가 예견한‘제4의 물결’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는 속도와 공간의 혁명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은 계속해서 다음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도전 속에 기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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