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재계 마당발] 대기업 채용 윽박지르더니…

입력 2013-09-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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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신(神)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던 공기업의 위상이 과거보다도 높아졌다. 요즘은 ‘신이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이라는 우스갯말이 세간에 통한다.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데다 정부가 제시한 ‘정년 연장’을 비롯한 갖가지 혜택은 웬만한 사기업을 뛰어 넘는다.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좋은 직장에서 경영부실과 방만경영, 비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데 있다.

채용 한파가 몰아칠 때마다 이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이 도마에 오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온 나라가 마른 수건도 짜내는 마당에 ‘나라 돈’도 겁없이 쓴다. 마사회는 개인적인 용무로 지방에 내려가는 직원에게 출장비를 지급하다 구설수에 오르고, 원전은 비리 탓에 멈춰서기도 한다.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오르고 부채는 쌓여만 간다.

그럼에도 정부가 외치는 ‘고용’과 ‘채용’에는 꽤나 인색하다. 주요 대기업이 하반기 공채를 시작한 상황에서 공기업의 채용규모는 예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각 부처에 따르면 한국전력 등 30개 공기업의 하반기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는 1200명선에 머물렀다. 작년 하반기보다 25%가량 줄어든 규모다. 30개 공기업 중 하반기 채용 계획이 아예 없는 곳도 16곳이나 되며, 이는 전체 공기업 수의 절반을 넘는다.

공기업별로 채용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전체 고용시장에서 공기업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다. 이 때문에 사기업에게 틈만 나면 ‘채용’을 외치는 정부가 공기업 일자리 늘리기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공기업은 “1인당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무리한 채용은 경영 부실의 원인이 된다”며 채용을 줄이거나 철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주요기업은 억지로 채용을 늘리고 있다.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얻어오고 있는 마당에 국내 채용과 투자를 늘리려다 보니 그 부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 벌어오는 해외 생산거점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게 훨씬 유리한 선택이다.

상반기 10대 그룹 상장사의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의 고용 여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채용 압박’에 고용을 가까스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채용을 늘리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이런 의무를 부추긴다. 회장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는 마당에 채용에 인색했다가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본격적인 채용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각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우리 국민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연간 계획에 비해 1만3000명 증가한 약 14만명의 고용이행 계획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웃으며 화답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공기업은 채용에서 발을 뺐고 기업은 억지로 발을 담그고 있다. 늘어난 부담은 누가 풀어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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