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칼럼]언제까지 부패공화국 오명 쓸 것인가

입력 2013-08-0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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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논설실장

정부가 ‘김영란법(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을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지난 2011년 6월 14일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관련 법안을 처음 보고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입법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어서 만시지탄이다.

김영란법의 원안은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수정안은 직무와 관련됐거나 지위·직책에서 나오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해 금품을 받은 경우만 형사처벌토록 대폭 완화됐다.

금품을 받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대신 받은 돈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과태료만 물리도록 한 것이다. 과태료는 공무원들의 신상에 미치는 영향이 징역이나 벌금형 등 형사처벌보다 훨씬 약하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무원이 뇌물죄로 실형을 받거나, 집행유예·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 공무원직을 잃고 범죄경력자료에 기록돼 전과자가 된다. 벌금형은 직을 잃지는 않지만, 전과 기록이 남는다. 그러나 과태료는 금액에 상관없이 공무원 신분이 유지되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직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금품을 받은 모든 공무원을 처벌하지 않고는 뇌물과 상납의 부패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공직자에게 돈을 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뇌물 제공과 대가성의 입증 어려움을 이유로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 부과로 처벌 수위를 완화한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과 같다.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국회 심의과정에서 금품수수에 대해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원안을 회복하는 게 옳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김영삼 정부가 실시한 금융실명제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당시 일각에서 금융실명제 실시는 ‘돈맥경화’로 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고, 급기야 무기명 채권 등 지하자금이 도망갈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이 화근이 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에 애를 먹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무기명 채권으로 지하자금이 숨어든 탓일 것이다. 불법은 법의 경계를 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지를 두면 안 된다.

대한민국을 부패공화국으로 보는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그렇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아시아 선진국 중 ‘최악의 부패국’으로 꼽혔다.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는 6.98점으로 지난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한국 부패지수는 싱가포르, 일본, 호주, 홍콩보다는 2~3배가량 높고 중국, 미얀마, 인도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도 2012년 조사대상 176개국 중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전년도 43위에서 45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OECD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인 대한민국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평판이다.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부정부패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부패와 경제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렴도가 OECD 평균 수준만 돼도 연평균 성장률이 약 0.65%포인트 상승하게 돼 올해 4% 내외의 성장률 달성이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김영란법의 국회 입법화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이 법이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은 물론 국회의원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옥죌 수도 있는 법안의 원안 회복 대신 일부 조항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투명성기구 조사에서 정당과 국회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회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했던 종전의 모습을 탈피해 김영란법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 일각에서 김영란법안이 국회로 이관될 경우 원안대로 회복하겠다고 의지를 보이는 만큼 일단은 믿어 볼 수밖에.

혹시라도 민주당이 장외투쟁 등으로 입법화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부도 못한 부정부패 척결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공언한 이상 새누리당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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