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약국 80% 이상에서 처방전과 성분은 같지만 값이 싼 약으로 대체조제를 한 후 실제로는 고가 약으로 청구하는 등 ‘청구 불일치’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따르면 심평원은 2009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전국 약국 2만1016개소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국 1만6300여개(80%)의 약국에서 공급ㆍ청구내역 불일치 사실을 확인했다.
의약품 청구 불일치란 제약사나 도매상에서 약국에 납품한 의약품 내역과 청구명세서를 기준으로 약국에서 빠져나간 의약품 내역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심평원이 밝힌 공급·청구 불일치 사유는 △동일성분 의약품으로 대체조제를 한 후 처방전과 동일한 의약품으로 청구 △약국 간 거래로 인한 공급내역 누락 △폐업약국 인수 △공급업체의 보고 오류 등이 거론됐다.
심평원과 감사원은 대체조제 약은 저가 약인 경우가 많다고 보고 청구와 실제 조제행위가 다르게 진행되는 이른바 ‘싼약 바꿔치기’가 이뤄졌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청구 불일치 논란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건강보험 약제 관리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감사원은 조사 대상을 확대해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확인하라고 심평원에 지적했다.
심평원은 현재까지 1ㆍ2차 총 1095곳의 청구 불일치 약국에 서면 확인 자료를 발송해 약국의 소명을 받고 있으며 이달 말 3차 서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심평원은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한 내역이 없을 경우 환수 조치를 할 계획이지만 워낙 청구 불일치 규모가 크고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아 확인을 마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약국은 왜 약국에 소명 책임을 전가하느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 약국 간 거래가 일어날 경우 청구 불일치가 나타날 수 있고 재고 약을 사용했는데 미반영 됐거나 공급자인 유통업자가 신고를 누락하는 기재 착오 등의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약사는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가 2008년에 생겼기 때문에 2007년 이전에 구입한 것을 쓴 것은 청구 불일치로 잡힌다”면서 “의약품의 반품이나 폐기가 원활히 되지 않다보니 약이 수만품목인데 처방이 바뀌면 관례상 인근 약국에서 빌려다 사용하곤 한다. 약국 간 거래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심평원은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오류 금액이 적은 약국은 서면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감사원과 협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사가 처방한 약이 환자도 의사도 모르게 다른 약으로 바뀌었을 개연성이 높다”며 “이 때문에 환자가 무슨 약을 먹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전 1매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제내역서의 발행이 의무화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청구불일치 사건은 국민의 건강이 달린 일”이라며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유효기간 내 재고, 약국간 교품, 불용재고 폐기자료 등이 불인정되는 문제점으로 인해 야기된 1만여 명이 선의의 피해자임을 알면서도 본질을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