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유쾌통쾌]편의점 CU가 갚아야 할 마음의 빚

입력 2013-06-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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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씨는 지난 2월 네팔 간다키 카스키 지역 비렌탄티 마을에 2층 높이의 학교를 지었다. 8개의 교실과 교무실, 컴퓨터실, 양호실, 화장실 등을 갖춘 번듯한 건물이다. 이곳은 엄 대장이 네팔에 지은 네번째 학교다.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를 완등한 엄 대장은 앞으로 16개까지 학교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엄 대장이 네팔에 학교를 짓기 시작한 것은 그의 히말라야 첫 등정을 함께한 셰르파 ‘술딤 도르지’ 때문이다. 도르지는 1986년 두번 째 에베레스트 도전에 함께 했던 셰르파다. 그는 해발 7500m 암벽을 타며 짐수송을 하다가 추락사했다. 에베레스트를 내려오며 도르지의 죽음을 전하러 그의 집에 간 엄 대장은 어머니와 결혼한 지 넉달밖에 안된 신부 학파디기의 망연자실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 사람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나니 히말라야에 다시 오르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두렵고 무서웠을 뿐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엄 대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번째 도전 만에 8000m급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고, 이후 2007년까지 16좌를 완등했다. 1985년부터 22년 동안 38번 도전 끝에 얻은 값진 성과지만 그는 산악인 6명, 셰르파 4명 등 모두 10명의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엄 대장은 네번째 학교를 완공한 날 “그들(셰르파)이 남기고 간 아이들을 보면 한편으론 위안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가장이 없는 집안에서 자라야 하는 그들이 너무 안쓰럽습니다. 그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빚을 갚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 중 하나는 ‘상생’이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맞춰 기업들이 상생과 협력을 제1의 경영원칙으로 내세울 정도다. 물론 누구나 얘기하다 보니 정부의 압박에 흉내만 내는 기업들도 많다.

편의점업계 1위 CU(구 훼미리마트)의 경우가 그렇다. CU는 가맹점 수 1위의 국내 최고의 편의점 업체지만, 시장 일선에서 회사 이익을 위해 몸바쳐 일한 가맹점주들을 하찮게 여겼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본사 영업사원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숨진 한 가맹점주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들은 사망 원인을 조작한 내용을 전국 언론에 뿌렸다.

자신들과 함께 최일선에서 영업을 함께 한 가맹점주의 사망 원인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유야 어찌됐건 그들은 가맹점주를 회사 직원과 똑같이 대하기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엄 대장은 셰르파들의 헌신과 도움 없이 에베레스트 16좌 완등을 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자신의 공이 아닌 동료 산악인들과 그들의 몫으로 돌렸다. 한국형 편의점을 꿈꾸고 1등을 내세우는 CU가 엄 대장이 셰르파들을 생각하는 마음의 절반, 아니 10분의 1만이라도 생각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생겼을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본사와 함께 한 가맹점주들에게 CU는 평생 동안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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