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논설실장
마녀사냥은 기독교도가 이교도를 벌하기 위해 행해졌다. 당시 유럽 전역을 죽음으로 내몬 페스트의 창궐이 마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마녀들을 죽여야만 이 죽음의 병이 사그러들 것으로 믿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재정 확보를 위해 돈 많은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또 평소 적의를 품고 있던 사람이 상대방을 마녀나 악마라고 몰아세워 처형했다.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여자는 물론 여자가 해야 할 일 이외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거나, 심지어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여자도 마녀라는 낙인이 찍혔다. 프랑스의 전쟁영웅 잔 다르크도 마녀사냥의 희생자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의 영향력을 받지 않거나 남성보다 뛰어난 여자는 마녀일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당시에도 재판은 있었다. 그러나 재판이라는 것이 불에 태웠을 때 죽지 않으면 마녀, 죽으면 마녀가 아니라는 식이다. 또 우물 같은 곳에 빠뜨렸을 때 떠오르면 마녀, 떠오르지 않고 죽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니 낙인찍히면 살아날 방법이 없었을 듯하다.
마녀사냥은 시대가 바뀌면서 여론재판으로,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민재판의 형태로 변화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인민재판으로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1980년도 신군부가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실시한 삼청교육에도 ‘평판’이라는 여론재판이 나타났다. 교육생들은 폭력범 등 조직폭력배와 우범자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사이가 나쁜 상대방을 헤코지할 목적의 투서에 의해 끌려간 선의의 피해자도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때리기도 마녀사냥으로 흐르고 있다.
주가 하락을 틈탄 증여가 증여세를 적게 내기 위한 행위라며 상속세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시장 가치를 무시하는 태도다. 대기업 총수와 경영자가 저지른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초법적 발상도 나온다. 대기업 총수라고 해서 사면권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 사면권 행사에 있어서도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는 금융기관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심사기준이 지나치다. 2금융권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유지 조건은 49개 금융 관련법과 공정거래법 및 조세범처벌법 등 총 51개 관련법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주주 자신뿐 아니라 특수관계인이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 두 사람 모두 주식강제매각명령을 내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죄를 묻겠다는 일종의 연좌제인 셈이다.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며 손해액의 3~10배의 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여기에 금산분리와 공정거래법 개정안까지 감안하면 살아남을 대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조세회피국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도 그렇다. 국내 16개 대기업의 281개 페이퍼 컴퍼니 중 85% 정도가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해운법인이지만, 지금은 페이퍼 컴퍼니를 뒀다는 사실만으로 탈세 등 법을 어긴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발표한 페이퍼 컴퍼니 중에는 이미 해당 기업과 연을 끊었거나 정리된 사례도 있지만, 명단이 발표되자 주식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주가가 출렁이는 후폭풍을 맞고 있다.
여기에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들까지 무차별적인 조사에 나섰다. 중세 유럽에서 특별한 여자라는 이유로 마녀 취급을 했던 것과 대기업과 대기업 오너라는 이유만으로 범법자로 몰아세우는 우리 사회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과거 ‘공업용 우지’ 파동이 대표적이다. 투서로 촉발된 이 사건으로 인해 삼양식품은 사회적 매도를 당했고,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사실은 인체에 해가 없는 분류상의 문제였던 것이 밝혀졌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서울시가 낙지에서 카드뮴이 검출됐다고 발표한 이후 낙지을 먹는 사람이 크게 줄어 어민과 낙지상인들이 곤욕을 치른 것도 비슷한 경우다.
경제민주화는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때리기가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가 자신들의 잘못을 대기업의 탓으로 돌리는 투사현상은 아닌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