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노동자는 ‘부품’에 불과…을이라도 되고 싶다”

입력 2013-06-07 08:28수정 2013-06-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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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을도 못된다.병·정이다. 정말 을이라도 되고 싶다.”

ICT산업계 개발자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갑을관계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특히 IT업계의 경우 다단계 하도급 구조 및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이 6~8차까지 이어져 이 과정에서 개발비용이 발주시의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하나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은 6일 국회에서 ‘IT노동자 증언대회’를 열고 IT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이같은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IT 실무 개발자들은 “프로그래머는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전락했고, 우리의 일상은 월화수목금금금이 된지 오래다. 직원이 연간 4000시간 초과근무하는 회사가 전세계 그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장하나(왼쪽) 민주당 국회의원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IT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IT노동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장하나 의원, 나경훈 IT노조위원장, 김종득 게임개발자연대 대표, 이재왕 소프트웨어개발환경 개선위원회 대회.
이날 행사에서 나경훈 IT노조위원장은 “IT노동자들과 이렇게 한 자리에서 이야기해 본 것은 처음”이라며 “그만큼 IT노동자들은 시간을 내서 한 자리에 모여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1일부터 20일까지 IT노조 홈페이지와 각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진행된 소프트웨어부문 IT노동자들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026명의 소프트웨어 노동자가 참석한 이번 실태조사 결과 20대 이하 노동자 비율은 32.9%로 나타났다.

2004년 같은 조사에서 20대 이하 노동자 비율이 53.7%를 차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IT산업의 신규 유입이 원활치 않음을 나타내는 결과였다.

반면 40대 이상 노동자 비율은 2004년 0.9%에서 올해 10.5%로 크게 증가했다.

▲권오현 UFOfactory 대표개발자가 6일 장하나 민주당 국회의원,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IT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프로그래머의 현실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나경훈 위원장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IT산업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의 경우 전산관련 전공이 미달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IT노동자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야근을 줄이고 야근 수당에 대한 부분도 기업이 확실히 지키고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등 노력이 있어야만 IT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IT분야 일자리를 늘린다고 한다”면서 “단순히 일자리만 늘리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날 실제로 IT업계에 종사를 하다 업무 과다, 불법적 압력 행사 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돼 일을 그만둔 IT노동자들이 실제로 겪은 사례를 증언했다.

자신을 전 농협정보시스템 개발자라고 밝힌 양모 씨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 반 동안 정규직으로 시스템통합(SI) 개발 업무를 맡았다.

양씨는 “당시 연간 약 4000시간 이상을 야근에 시달렸고 2년 반 동안 800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며 “이로 인한 업무과다와 스트레스로 폐렴진단을 받고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양씨에 따르면 회사는 협박이나 직원의 항의에 보복을 하기도 했다. 양씨는 “야근시간 할당이나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해 항의하니 연봉삭감이나 인사팀장은 월급을 안주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며 “심지어 직원의 서명을 위조해 회사에서 할당한 시간만큼 근무했다고 5~6가지의 위조된 서명으로 작성했더라”라고 토로했다.

그는 농협정보시스템은 여전히 매월 8~12시간의 야근시간을 할당,직원들에게 일은 몇배로 시키고 할당된 시간 만큼만 인정해 야근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양씨는 이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도 야근수당 문제로 인해 농협정보시스템과 소송중이다.

전 H컨설팅 개발자로 일했다는 이모 씨 역시 IT노동자의 현실은 암담하다며 자신이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14년간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했다는 이씨는 10여개의 회사에서 일하며 파견이 일상이었다며 쏟아지는 일도 일이지만 원청사 직원들과 자회사 직원들의 횡포, 비인간적 대우에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하루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하면서 항상 남의 눈치만 보고 협박을 받는 것도 일상”이었다면서 “이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고 아토피가 발생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도 심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장하나 의원은 이같은 현실에 대해 “IT노동자들은 다른건 다 좋으니 현행법만 지켜져도 좋겠다고 말한다”라며 “이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공통된 현실이기도 하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 의원은 이어 “IT업계의 경우 다단계 하도급 구조 및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 파견 가능업종으로 되어 있는 현실이 문제”라며 “IT업계의 하도급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 식으로 6~8차까지 하도급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고 이 과정에서 개발시간과 개발비용이 발주시의 2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로 인해 내가 누구에게 고용됐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어떤 문제가 생겨도 싸울 수 있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결국 노동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장 의원은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IT노조 등과 협의를 통해 △하도급 관련 용어 정의 △소프트웨어사업에 관한 도급 또는 하도급 계약시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수급인은 도급받은 사업금액의 100분의 50을 초과해 하도급할 수 없도록 하는 제한사항 등의 내용을 포함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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