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눈물]생계급여 삭감 민원인에 흉기 테러 “부모님껜 넘어졌다고 했어요”

입력 2013-05-30 10:37수정 2013-05-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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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바늘 꿰맨 성남시복지공무원

지난해 4월 4일 생계급여가 삭감된 민원인에게 얼굴, 목, 손 등을 네 차례 이상 찔린 김모(46) 주무관을 만나기 위해 성남시청에 들어섰다. 입구에는 ‘시민이 행복한 성남, 시민이 주인인 성남’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3번의 성형수술을 거쳤고 길이 30Cm 정도의 예리한 흉기를 잡았던 손은 120바늘을 꿰매야 했다. 끔찍한 사고를 겪었지만 김 주무관은 예상외로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사고가 나고 5개월 뒤 그는 민원인과 직접 마주치지 않는 부서로 복귀했다. 공무원 생활 14년 차인 그는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토로했다.

일용직근로자도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2011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신청자들이 실제 일했는지 조사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기초생활수급권자였던 유모(37)씨는 한 달에 6~7번 일한 기록이 있어서 생계급여가 20만원 삭감됐다.

유씨는 이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4월 4일 오후 1시20분께 김 주무관을 찾아왔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하 사통망)이 도입되면서 시군구 통합조사관리팀에 모든 급여 관리 업무가 넘어왔다. 민원인들도 구청 담당자가 조사했기 때문에 해당 담당자가 급여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였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눈빛이 이상했습니다. 점심 먹고 앉아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 구두로 갈아신었죠. 워낙 민원인들이 때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20분 정도 유씨는 “급여를 달라”고 사정했다. 이번만 눈감아주면 되는데 왜 이리 빡빡하게 구느냐며 따졌다. 하지만 이 사람을 봐주면 또 다른 사람도 봐줘야 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때 유씨가 준비해 온 흉기를 꺼내 마구 휘둘렀다. 유씨와 김 주무관의 거리는 불과 1m였다. 그 당시 사무실에는 CCTV도, 청원경찰도 없었다. 김 주무관은 다른 사람들이 혹시 흉기에 찔릴까 싶어 흉기를 맨손으로 잡고 뒤로 쓰러졌다.

사고 이후 김 주무관은 키 185cm인 유씨와 비슷한 체형의 사람을 보면 몸이 움츠러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먼저 타지 못하고 누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지하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는 주변 사이사이 공간을 유심히 살펴본다. 혹시라도 누가 튀어나와 자신을 덮칠까 싶어서다. 유씨는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1년째 복역 중이다.

“마누라랑 애들은 알고 있는데 차마 부모님께는 말 못하고 퇴근하다 넘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가끔 그 사람을 그냥 봐주고 눈감아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도 듭니다. 하지만 알고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업무 과다로 자살하면서 여러 가지 힐링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2박3일 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김 주무관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갔다온 후에 처리해야 할 업무 때문이다.

사통망에 들어가서 김 주무관의 아이디를 치면 현재 처리 건수와 미처리 건수가 뜬다. 김 주무관이 오늘 처리해야 될 장애인활동보조지원 처리 건수는 213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저녁 먹고 8시나 9시가 돼야 처리한다고 했다. 낮에 하면 되지 않냐고 물으니 낮에는 입력 속도가 너무 느려서 계속 모래시계만 쳐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녁 시간이 돼야 속도가 빨라진다고 김 주무관은 말했다.

김 주무관은 “실무자 입장에선 전달체계를 개편해 보건소처럼 ‘보건복지사무소’를 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직급 관계보다는 대학교 선후배처럼 사회복지 공무원들끼리 모여 있으면 멘토 역할도 하고, 지금의 문제들도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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