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시대 머니무브]“한푼이라도 더 불리자”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돈 몰린다

입력 2013-05-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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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예금 MMF·채권으로… 인도·베트남 등 국채 관심

현재 금융시장의 키워드는 저금리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최저 연 1%대로 떨어지면서 예금만으로 돈을 불린다는 것은 이젠 불가능한 시절이 됐다. 예금 자산을 줄이고 투자자산 비중 늘리는 게 트렌드가 됐다.

때문에 최근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들은 말 그대로 대목을 맞았다.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강화에 이어 지하경제 양성화 조치까지 나오면서 자산가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금융권 자금이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투자처로 이동하는 이른바 ‘자금의 신(新)조류’ 현상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머니 무브’에 금융권 희비 교차 = 한국은행이 지난 9일 기준금리를 7개월 만에 인하하면서 시중은행 예금이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연 2%대 예금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빼면 실질금리는 거의 제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3개월 연속 감소한 상태다. 지난 2월과 3월 각각 4조2000억원, 1조7000억원 줄어든 데 이어 지난달에도 1조2000억원 감소했다. 기준금리가 인하되고 정기예금 금리도 하락 곡선을 그리면서 이달 들어 은행별 예금잔액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시중자금의 예금 이탈이 빨라지고 있다.

당장 예금 금리가 낮아지면서 은행 이자로 먹고사는 은퇴 후 이자 생활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이달 기준금리 인하로 예금 이자가 1조68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저금리 속에 대표적 단기자금인 수시입출식예금(MMDA)과 머니마켓펀드(MMF)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MMDA보다 상대적으로 금리 인하 속도가 느린 MMF로의 자금 유입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

우리, 신한, KB국민, 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MMDA 잔액은 지난 3월 말 42조7000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4조원 가까이 빠졌다. 반면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받으려는 투자심리로 지난 1월 MMF에는 14조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금리 하락기에는 MMF가 다른 단기 금융상품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MMF에서 10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은행 예금이 줄어든 데다 기업 등 법인들이 수익률이 낮은 MMF 대신 채권 매입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MMF 수탁액은 65조2111억원으로 3월 말 75조3292억원에서 10조원 넘게 줄었다. 지난해 말 63조원이던 MMF 수탁액은 단기 부동자금이 늘어나면서 지난 2월 81조7500억원까지 급격히 늘어난 뒤 75조~80조원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미세한 금리 차이에도 부동자금이 급속히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은행 이탈 자금 전통적 투자처 탈피 = 이제 관심은 저금리 기조에 정부의 세법 개정안 등의 여파로 은행권에서 이탈한 자금의 향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피해 금값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금·은 등의 상품을 찾는 자산가들이 급속히 느는가 하면 북핵 등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와중에도 주식·펀드 같은 위험자산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 취했던 전통적 투자공식이 파괴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식시장 대기자금(투자자 예탁금)은 지난해 말 17조원에서 이달 현재 2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국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증권사가 내놓는 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베트남 등 제3세계 국채는 출시되는 즉시 동이 나고 있다.

급기야 일본 펀드에도 투자자의 발길이 늘고 있으며,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금도 늘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이 지난달 22~26일 판매한 ‘교보악사미국부동산증권투자신탁 2호’에는 나흘 만에 154억원이나 몰렸다.

한상언 신한은행 투자상품부 팀장은 “금리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리스크가 다소 있더라도 예금금리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비과세 혜택이 있는 혼합형 펀드나 간접적 절세 효과가 있는 월지급식 펀드가 가장 인기”라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급 유입도 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저금리 기조로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주택금융공사 적격대출 포함)은 전달보다 4조2000억원 증가했다. 석 달 연속 늘어난 것으로 2월과 3월 증가폭인 1조3000억원과 1조5000억원의 세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도 전달보다 3조2000억원 급증해 지난해 12월(5조7000억원)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편 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경우 은행의 자금이 대규모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시중자금 흐름 변화와 은행권의 과제’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07년 본격적 머니무브(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로의 자금 이동)가 진행되기 이전에도 저금리와 자본시장 관련 규제 변화로 은행에서 시중자금의 이탈이 진행됐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시중자금의 수익률 민감도가 상승해 있는 가운데, 금융소득종합과제 기준이 강화돼 경제주체들의 대규모 자산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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