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챔프 김주희 뒤에는 참스승 있었네![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3-05-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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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중부대학교 석사학위 수여식 당시 김주희(좌)와 정문호 관장. 그는 김주희의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자 코치다.(사진=뉴시스)
지난 2004년 한국 스포츠사를 다시 쓰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열여덟 살 소녀복서 김주희(27ㆍ거인체육관)가 국내 최초 여자프로복싱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빵을 훔쳐 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꼬마아이가 세계챔피언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복싱 입문 3년 만이다.

김주희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싱을 글러브를 꼈다. 어머니는 모진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린 김주희를 두고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졸지에 노숙자 신세가 된 김주희는 복싱에 기대기 시작했다.

그의 주먹은 강했다. 그와 함께 링에 오른 선수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링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의 연승행진은 챔피언 벨트 획득 이후에도 계속됐다. 무려 11개 기구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 여자복싱계를 발칵 뒤집었다.

그러나 그는 홀로 빛나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늘 정문호 관장이 있었다. 그는 오갈 데 없던 김주희에게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자 코치가 됐다. 그는 체육관에서 복싱을 가르치기 전에 책 읽는 법을 가르쳤다. 어른들이 운동할 때 체육관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게 했다. 독서 후에는 항상 독후감을 쓰게 했다. 영어단어 외우기는 필수였다.

그러나 김주희는 정문호 관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정 관장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어른이 된 후다. 김주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과 학업 병행이 습관화 됐다. 지금은 중부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이어가고 있지만 학업을 잊은 적이 없다. 정 관장의 ‘잔소리’ 때문에 잊을 수도 없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그날 학습은 그날 마쳐야 했다.

정 관장에게는 김주희와 동갑네기 딸이 있다. 그러나 정착 자신의 딸에게는 좋은 아빠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도 없었다. 오로지 어린 김주희를 뒷바라지하며 세계챔피언 만들기에 온힘을 쏟았다. 그래서 가능했다. 김주희를 빛나는 별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

스타플레이어 뒤에는 항상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그러나 스포츠스타 뒤에 가려진 스승을 알아주는 이는 거의 없다. 빛나는 별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정문호 관장님, 당신은 별보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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