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대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이른바 ‘금융권 4대 천왕’의 사퇴를 종용해 왔다. 그 결과 강만수 전 KDB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가장 먼저 권좌에서 내려왔고, 이에 따라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도 조만간 거취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줄곧 ‘4대 천왕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금융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후임인사의 인선 원칙임을 기회될 때마다 강조했다.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전문성에 기초해서 최적의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이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는 곧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4대 천왕’의 등장에 금융권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4대 천왕 인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혁 의지와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강 전 회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홍기택 중앙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첫단추가 잘못 꿰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해 보인다.
알려진 대로 그의 금융관이나 과거 언행은 새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다. 새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에 강하게 반대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몸 담았던 그의 금융관이 박 대통령의 금융관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은 정부로서는 부담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질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새정부는 인사의 원칙으로 전문성을 제시했다. 한쪽에선 전문성 있는 전 정권 인사의 사퇴를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전문성이 의심스런 측근 인사를 임명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급해진 홍 내정자는 지난 7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오해를 적극 해명하는 촌극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은 금산분리 반대론자도 아니며 지금은 산업은행 민영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인수위원으로서 새정부의 금융정책을 기초한 만큼 새정부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게 기자회견의 골자였다.
대통령과 서강대 동기동창이자 인수위원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그의 임명은 ‘낙하산 인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쉽지 않다. 이번 인사는 ‘박근혜식 보은인사’이자 ‘박근혜식 4대 천왕’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금융산업 개혁 의지는 시작부터 빛이 바래며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