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죽음의 원가’ 가설과 창조경제-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3-04-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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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이란 생명체를 보듯이 사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생태학자는 관찰을 토대로 변화를 본다. 생태계는 자기 평형적 특성에 의해 절묘한 균형을 취하고 있다. 만일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가 사물을 바꾸는 진정한 변화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사회생태학자 피터드러커의 모습이다. 관찰의 목표는 그 변화를 기회로 바꾸는 길을 발견하고 변수를 찾아내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생태계적으로 접근하여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통해 중소기업의 생명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생명을 위협하는 커다란 국제적 흐름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생태계를 위협하는 죽음의 원가사이클이라는 국가산업경쟁력가설이 있다. 생산성과 원가경쟁력은 운명적인 순번이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 버밍햄에 가면 역사적인 기업들의 흔적조차 없다. 대신 후발국이었던 미국이 포디즘이라는 대량생산방식으로 영국을 대신해 산업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일수록 찬란한 산업의 역사만큼 유산비용(Legacy Cost)이 높아지는 반면, 신흥국 후발주자일수록 저렴한 인건비에 최첨단의 모델도입이 가능하여 원가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일본의 린 생산방식이 미국의 대량생산방식을 따라 잡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생산현장에 ICT기술이 융합된 스마트모듈형 생산방식이 아날로그식 일본의 원가경쟁력을 추월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이러한 생산방식을 주도하면서 세계에서 성공한 경제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래서 운명적 순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서쪽국가로 향하는 특징이 있었다. 이때까지가 우리나라에게는 원가사이클가설의 축복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의 시원지이자 중국 최초 개방특구였던 심천의 중국기업들과 화창뻬이 전자상가를 방문해보면서 원가의 순번가설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 너무나 확실해 보였다. 화창뻬이 상가의 중국제품 판매가격은 한국전자제품 판매가격의 10%이하에 불과하였으며, 그 가격은 디자인-금형-구매-조립의 완전한 가치사슬산업망 구축의 결과물이다. 중국은 이미 첨단기기 제조산업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이미 한국기업의 생산성을 앞지르고 있었다. 세계의 공장을 200여회이상 방문한 적이 있는 필자로서 원가의 운명적인 순번가설이 주는 충격은 매우 컸다.

‘죽음의 원가경쟁력과 운명적 순번가설에서 우리나라의 기업생태계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이 질문이 앞으로 우리 경제의 핵심과제가 되어야 한다. 죽음의 원가가설을 가장 효과적으로 극복한 독일경제의 R&D와 해외시장개척의 교훈이 있다. 그 성과가 히든챔피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진흥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범용품을 싸게 만드는 저원가경쟁정책에서 신기술로 시장을 개척하는 창조경제정책으로 대혁신이 필요하다. 차별화에 성공하지 않고 원가경쟁의 사이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범용품업체야말로 죽음의 원가가설의 제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원가경쟁력의 순번이 중국과 같은 신흥국으로 넘어갈수록 한국의 중소기업은 저원가전략으로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 원가가설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부품업체가 제안능력을 갖춰야 하고, 조립업체와 열린 혁신의 파트너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일본과 독일에서 성공하고 있는 강소기업들은 원가싸움을 피해 창조적 기술과 신속한 AS로 승부하고 있다. 이제 우리 중소기업들도 기술개발의 파트너이자 제안능력을 갖춘 창조경제형 연구개발업체로서의 역할변화가 필요하다. 수입에 의존하던 해외기술을 대체하도록 하는 대기업의 지원의지확산도 필요하다. 최근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가 개발중심의 창조적 동반성장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신기술개발공모제 등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중소기업에게 개발비를 지원하여 지속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하게 하는 이 제도는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제 생산강국을 만드는 중소기업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발강국으로 바꾸어 가는 획기적인 중소기업 창조경제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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