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재계 혼맥]동국제강, 故 장경호 창업주 손자ㆍ손녀 통해 금호ㆍLG그룹과 인연

입력 2013-03-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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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ㆍ3세 대부분 학자ㆍ사업가 집안과 혼맥 이뤄

재계에서 안정적인 3세 경영을 이루고 있는 동국제강은 여느 재벌가 혼맥과 차이점을 지닌다.

평범했던 창업주와 달리 2세 경영부터 재계와 학계로 혼맥이 뻗어나간다. 그러나 어느 세대에서도 남다른 불심(佛心)이 서려 있다. 창업주 고(故) 장경호 회장의 뜻에 따라 화려한 혼맥의 이면에는 대부분 불심 깊은 배우자들이 있었다.

◇철사와 못 뽑아낸 조선선재가 모태 = 동국제강의 모태는 부산을 중심으로 1949년 설립된 조선선재다. 창업주 고 장경호 회장은 189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이름난 부농 고(故) 장윤식씨와 어머니 고(故) 문염이씨의 3남이었다.

그가 커오던 시절은 대부분이 서당공부도 어려웠던 때였다. 소년 장경호는 부친의 뜻에 따라 서울로 유학길에 오른다. 아무리 부농의 아들이었지만 당시 서울 유학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나이 고작 14살 때였다.

유학은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시작했다. 당시 웬만한 서울 유지 자녀도 들어가기 어렵다던 곳이었다. 당시 보성학교에는 부산 출신 유학생이 두 명뿐이었다. 장 회장과 나머지 한 명이 4·19 직후 과도정부 수반이었던 정치인 허정씨였다. 둘은 고향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통했다. 훗날 정계를 은퇴한 허씨가 쓸쓸한 말로(末路)를 보낼 때, 장 회장이 보이지 않게 안팎으로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보성보통학교를 졸업한 장 회장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다양한 사업 구상도 이때 시작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장 회장은 미곡사업과 창고업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철(鐵)과의 인연은 1949년 시작했다. 우연찮게 재일교포로부터 철사를 뽑아내는 기계 ‘신선기’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장 회장은 이 신선기를 앞세워 조선선재를 설립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조선선재가 동국제강의 모태인 셈이다.

◇창업주 2세대에서 LG와 금호로 혼맥 이어져 = 창업주 고 장경호 회장은 같은 부산 출신의 고(故) 추명순 여사와 결혼, 슬하에 11남매를 뒀다.

동국제강 경영일선에 나섰던 2세들은 창업주의 뜻에 따라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익혔다. 이들은 학자와 사업가 집안 자녀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재계와 이어진 혼맥 역시 조용하고 평범한 결혼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냈던 고(故) 장상준 회장은 부산에서 사업가로 이름났던 박상선씨의 딸 명년씨와 결혼했다.

고 장상준 회장의 자녀들은 동국제강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조선선재 전무와 사장 등을 맡으며 경영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이들은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동국제강의 혼맥 가운데 3남과 7남의 혼맥은 주목할 만하다. 본격적인 동국제강 시대를 일군 고(故) 장상태 회장과 한국철강을 이끌었던 장상돈 회장이다.

창업주의 막내아들인 장상돈 회장은 경복고와 동국대를 거쳐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한다. 이어 동국제강 경영에도 잠시 참여한다. 1982년 한국철강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2001년 한국철강의 실질적인 주인이되면서 독립했다.

장상돈 회장은 부인 신금순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뒀다. 이 가운데 차남 장세홍 한국철강 전무가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딸 은경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동국제강은 금호그룹과 연을 맺는다. 이어 차녀 인영씨도 고(故) 구두회 극동유화 명예회장의 아들 구자은 LS전선 대표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이다.

◇2대 장상태 회장, 두 아들 육군 장교로 키워 = 동국제강의 본격적인 역사는 3남 고 장상태 회장에서 시작한다.

큰형이었던 고(故) 장상준 전 회장은 일찍(1978년) 타계했고, 차남 고(故) 장상문씨는 회사 경영에 뜻이 없었다. 결국 동국제강은 3남인 장상태 회장 체제로 운영된다. 장 회장은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당시 부흥부(현재 경제기획원)에서 일했다. 선친의 뜻에 따라 동국제강 전무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에 나섰다. 1964년 대표이사로 취임했지만, 실질적인 동국제강의 새시대는 장상태 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장상태 회장은 2남3녀를 두었고 장남인 장세주 회장이 현재 동국제강을, 차남인 장세욱 사장이 유니온스틸을 맡고 있다.

장상태 회장은 창업주의 의지에 따라 자녀들을 엄격하게 가르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곳간이 차고 넘쳐도 자녀들에게 결코 이를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그에 대한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철인’으로 불렸던 장상태 회장은 두 아들 역시 남자로 키웠다. 부친의 뜻에 따라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두 아들 모두 장교 출신이다.

장세주 회장은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ROTC)로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 타우슨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막내인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은 육사 41기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1996년에서야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두 아들을 강하게 키운 장상태 회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국내 첫 후판공장 설립, 부산신철(현 한국특수형강) 설립, 동일제강 인수, 한국철강·한국강업 인수, 연합철강·국제기계·국제통운 인수, 기업 상장, 직류전기로 도입, 포항 후판공장 준공 등 대한민국 철강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겼다.

▲을지로 수하동에 위치한 동국제강 페럼타워 전경

◇불심으로 이어진 재계 혼맥= 1978년 말단사원으로 입사, 경리부·일본지사·인천제강소장·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친 장세주 회장은 2000년 1월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일선에 나섰다. 입사 22년 만이었다.

장세주 회장 취임 이후 동국제강은 매출이 2001년 1조7852억원에서 2004년 3조2674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2004년 새로운 CI(기업이미지)를 선포하면서 재도약을 노렸다. 결국 2010년들어 매출 8조원 시대를 열기도 했다.

2세 경영을 이어갔던 고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영빈씨는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차녀인 문경(48)씨는 서울 아산병원 외과교수로 재직 중인 윤준오씨와 결혼했다. 윤 교수는 국내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수부외과 전문의다. 손부터 어깨에 이르는 관절 및 신경계의 권위자다. 스포츠맨 가운데 여러 야구선수가 윤 교수의 수술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3녀 윤희(45)씨는 부산지역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 철(47)씨와 결혼했다. 이철씨는 현재 철강유통회사인 세광스틸 대표다.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고 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고 추명순 여사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건립한 불사(佛寺)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발전한다.

창업 회장을 이어받은 고 장상태 회장도 1996년 100억원을 출연해 대원복지재단(현 송원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장학사업·아동복지사업 등을 펼치며 선친의 유지를 이어갔다.

장상태 회장은 또 2000년 임종 직전 화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장묘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는데 이 역시 그의 불심과 무관치 않다. 부인 김숙자씨, 아들인 장세주 회장, 장세욱 전무도 이미 화장을 약속했다. 동국제강 혼맥의 특징은 대부분 깊은 불심으로 이어져있다. 설령 종교가 달랐을지라도 창업주의 뜻에 따라 불교와 연을 맺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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