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도 경영에 적극 참여… 부부 파트너십으로 그룹 이끌어
1916년 북한 함경도에서 범상치 않은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 사내아이는 또래가 맘껏 뛰어놀 나이에 일본계 기업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 이후 9년 만에 간부가 됐고, 약관을 막 넘은 23살의 나이로 창업에 성공했다. 주인공은 바로 고(故)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맨손으로 재벌그룹을 일궈낸 전설적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商道)에 충실해 온 이 창업주는 사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유일한 재벌 총수로도 유명하다.
슬하에 딸만 둘이었던 그는 평소 “내 딸, 내 사위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고 강조하며 여느 재벌가와 같이 화려한 혼맥을 고집하기보다는 ‘정직과 신용’에 근거한 ‘사람과 의리’에 중심을 뒀다. 이로써 맺어진 인물들이 바로 현재현(65)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59) 오리온그룹 회장이다. 이 창업주 집안은 재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단출하지만, 개성있는 혼맥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 ‘화려함’보다는‘의리와 사랑’= 창업주 고 이양구 회장의 러브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부인 이관희(85)씨를 북한에서 만났지만 한국전쟁 때 생이별한 후 남한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 결혼식을 올린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연애사를 보여준다.
한국전쟁 발발로 월남했다 공군 소속으로 고향 땅을 밟은 이 창업주는 34세의 나이에 함흥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관희씨와 약혼했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도 못 올린 채 생이별을 해야 했다. 부산으로 월남한 이 회장은 거제도에서 이관희씨랑 극적으로 상봉,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관희 여사는 현재 남편의 호를 딴 서남(瑞南)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동양그룹 30주년 기념으로 설립된 서남재단의 주요 사업은 장학사업, 학술연구지원, 복지사업 등이다.
이 창업주와 이 여사는 슬하에 두 명의 딸을 뒀다. 장녀인 이혜경(62) 동양그룹 부회장은 평소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고(故)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혼인했다.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고(故) 현상윤씨의 손자로,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故) 현인섭씨의 3남2녀 중 셋째다.
첫째는 현재천(70) 고려대 명예교수, 둘째는 현재민(68)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60) 세종대 음악과 교수, 차녀는 현재란(58) 이화의원 원장이다.
결혼 당시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던 현 회장은 이 창업주로부터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기 위해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하기도 했다. 장인으로부터 경영수업을 직접 받던 현 회장은 당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을 정도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혹독하게 체험했다.
현 회장 내외는 슬하에 1남3녀를 두고 있다. 네 명의 자녀 모두 미국 스탠퍼드를 졸업해 아버지와도 동문이다. 장녀인 현정담(37) ㈜동양 상무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2006년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해 현재 ㈜동양 가전사업부문 마케팅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다.
장남인 현승담(34) 동양시멘트 상무보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사이언스,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역시 MBA를 졸업했다. 현경담(32) ㈜동양 부장은 같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동양온라인에 입사, 현재 ㈜동양 패션부문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창업주의 차녀 화경(58)씨는 1980년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오랜 연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경선(29)씨는 미국 뉴욕대에서 졸업했으며, 서원(25)씨는 군 복무 중이다.
◇ 창업주의 쿨한 승계 “사위들이여, 받아라” = 이 창업주가 1989년 타계하자 동양의 경영권은 창업주의 뜻대로 맏사위인 현 회장은 동양그룹을, 둘째사위인 담 회장은 동양제과를 승계했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각각 독자적으로 경영을 해오다 2001년 9월 동양제과(현 오리온)의 계열분리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동양그룹은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분리됐다. 양 그룹은 분리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룹 CI(기업이미지)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창업주가 타계하는 그 순간까지 혹독한 경영자 수업을 치른 동양그룹 현 회장은 계열분리 이후 주력사업으로 금융분야를 선택했다. 이는 금융의 미래가 암울했던 시기에서 내던진 출사표로, 현 회장은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했다. 당시 자본금 20억원, 한 개 지점에 불과했던 일국증권은 불과 5년 만에 10대 증권사로 성장했다. 이는 현 회장이 경영자로서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한편 오리온그룹은 계열 분리 이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했다. 특히 메가박스는 전국에 1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며 최고의 영화관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투자 배급사인 쇼박스도 설립 3년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오리온그룹의 이 같은 성과는 부부가 함께 경영에 몸담으며 ‘최고의 파트너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여성적 섬세함에 남성 특유의 현실감이 보완돼 경영에 반영된 것이다.
언니인 혜경씨와 달리 도전정신이 강해 오래전부터 경영자 준비를 해 온 이화경 오리온 사장은 동양제과 시절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영업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서를 돌며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했다. 마케팅 담당 시절에는 ‘초코파이 정(情) 시리즈’ 광고 아이디어를 내 능력을 인정받으며 입사 25년 만에 동양제과 사장 자리에 올랐다.
실용주의자이자 ‘일벌레’라는 별명을 가진 담 회장 역시 구매부부터 영업까지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며 동양제과로 옮긴 지 8년 만에 CEO가 됐다.
특히 담회장은 중국 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중국 사업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해 1분기 중국 진출 15년 만에 현지 매출이 국내 매출을 약 500억원 이상 앞질렀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중국 매출은 국내 매출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