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이병철 회장의 추모식이 실시된 19일 오전, 용인 선영의 분위기는 오락가락하는 비와 함께 긴장감이 한껏 감돌았다.
선영으로 가는 추모식 입장로를 놓고 삼성과 CJ의 충돌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CJ는 예년처럼 삼성인력개발원 쪽 입구(CJ가 정문이라고 주장하는 곳)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입장을 요구한 반면, 삼성 측은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여 왔다.
앞서 지난 13일 CJ 측은 행사 주관자인 호암재단이 가족행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오후 1시 이후 참배, 정문 출입 불가, 선영 내 한옥(이병철 회장 생전 가옥) 사용불가 등을 통보해 왔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시간대를 달리해 추모식을 별도 진행할 수는 있지만, “장손인 이재현 회장이 뒷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냐”며 정문 출입을 줄기차게 요청해 왔다. 그러나 삼성은 정문과 후문 개념은 없다며 출입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아, 추모식 당일 양 측의 충돌이 예상된 바 있다.
이날 오전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오늘 모든 것이 결정 날 것이다. 아직 (이재현 회장이) 용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지 않겠냐. 전례가 남는다”고 언급했다. 이재현 회장이 그룹 사장단의 출입구인 호암미술관 쪽 길을 택할 경우, 범 삼성 일가가 아니라 손님으로 격하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이재현 회장은 추모식 불참을 결정했고, CJ그룹 측은 오후 1시 선영 입구에서 이같은 내용을 공식 밝혔다. 단, 사장단들의 참배는 예정대로 진행되며, 같은 날 저녁 선대회장의 제사도 이재현 회장이 자택에서 직접 모실 예정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과 CJ의 이같은 감정대립에 대해,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선대회장의 상속재산 소송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그 배경에는 삼성 가의 적통(嫡統)성 경쟁이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삼남이다. 선대회장의 장손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아들 이재현 CJ 회장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으로서는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사장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기 전, CJ와 얽혀있는 적통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CJ는 CJ일 뿐, 삼성이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말아 달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삼성은 19일 오후부터 삼성 블로그(blog.samsung.com)를 통해 10회 분량으로 취임 25주년이 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연재할 방침이다. 취임 후 25년 동안의 이건희 회장의 성과를 집중 조명해, 삼성의 급성장에 이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집중 강조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