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홍진석 부국장 " 삼성 애플 그리고 ‘메기론’ "

입력 2012-11-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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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들어서면 삼성그룹은 변화와 혁신에 나섰던‘신경영’선언 2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근본적 혁신과 변화를 촉구하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호통쳤다. 신경영의 핵심은‘메기론’으로 정리됐다. 포식자인 메기를 미꾸라지 무리 속에 함께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 덕에 더욱 강하고 튼튼하게 자란다는 양식업계의 경험을 경영전략으로 승화시켰다. 당장 느슨했던 삼성 조직 내에 메기 역할을 맡게될 안팎의 인재들을 대거 투입했다.

회장 중심으로 움직이는 타 그룹의 중앙집권형 경영과 달리 삼성그룹에서는 회장으로부터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야전사령관들이 글로벌 강자들을 맹추격하는 데 앞장섰다. 성과에 따른 보수도 파격적이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 황창규 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 등이 메기론의 성공을 입증한 산 증인들이다.

사실 메기론은 삼성그룹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산물유통업계 특히 고급 횟감어류 유통업계에서 널리 활용돼 왔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출장 중 현지 일식집에서 달인급 조리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과거 고급횟감은 산지 해변 지역으로 찾아가야만 제 맛을 볼 수 있었지만 천적효과를 살린 유통기법의 출현으로 대도시 한복판에서도 즐길수 있게 됐다고 한다. 수산물 화물차량 수족관 가운데를 유리판으로 막아 천적관계인 포식자를 다른 공간에 풀어 놓으니 운송 도중 폐사율이 거의 0%로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차량 운송에 따른 스트레스가 천적과의 동거라는 긴장감으로 인해 거의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오는 11월28일이면 아이폰이 한국시장에 첫 선을 보인지 3주년이다. 국내 모바일 단말기 시장에서 막강한 천적과의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그 이전까지 국내 모바일 시장은 모바일 생태계와 단절된 피처폰만 존재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이폰의 명성이 해외에서 들려왔지만 윈도 모바일 기반의 삼성 스마트폰 ‘옴니아’,‘옴니아2’는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데 힘이 부쳤다. 그럼에도 아이폰 국내 시장진입 전까지 국내 모바일 시장을 주도했던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천적 부재의 느긋한 생태계 안에서 태평성대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마침내 애플 아이폰이란 천적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모바일생태계는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천적의 출현에 준비를 소홀히 한 기업은 실적악화에 시달렸다. 스마트폰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한 군소 브랜드들은 퇴출이 불가피 했다. 삼성전자도 허둥대긴 마찬가지였다. 옴니아란 방어진지는 애플 아이폰 공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1990년대 메기론의 학습효과가 남아있었기 때문인지 삼성전자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과감히 갈아탔다. 윈도와 인텔 두 쌍두마차와 함께 글로벌 IT산업을 이끌어온 삼성전자의 승부수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모바일 대신 구글과 손잡은 뒤 갤럭시 시리즈를 시장에 내놨다. 또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갤럭시탭을 내놨다. 이어 갤럭시노트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면서 반격에 나섰다.

이제 삼성전자는 애플이란 천적을 끌어들인 내부의 적 KT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 듯 하다. KT는 아이폰을 국내에 진입시킨 덕에 스마트폰 마니아들로부터 ‘디지털문익점'이란 애칭까지 얻었다. 국내 생태계를 장악해온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란 투톱의 거센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약 당시 KT의 도발적 승부수가 없었더라면 삼성은 과연 요즘과 같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모바일 최강자에서 주변부로 내몰린 노키아처럼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할 위기에 처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들어 애플이 오히려 삼성의 반격에 허둥대는 듯하다. 삼성의 맹추격을 복제품으로 폄하하면서 특허소송으로 따돌리려 했지만 오히려 삼성 브랜드를 키워준 모양새다. 유럽 미국 등에서 글로벌 소송이 이어지면서 마치 삼성이 애플과 맞먹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짙어졌다. 물론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 삼성 내부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뒤 애플을 이끌고 있는 현 사령탑의 패착도 삼성에게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4,아이폰5 등 다양한 신제품의 동시 출시는 삼성전자의 전략을 따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구글지도 대신 내놓은 애플지도 역시 애플마나아들을 실망시켰다. 아이폰5의 국내 출시마저 여전히 안갯속이다. 하지만 삼성이 천적의 머뭇거림에 긴장의 끈을 풀기에 이르다. 여전히 모바일생태계는 구글과 애플 양강체제다. 모바일생태계의 주도권은 운영체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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