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컨트롤 타워인 기획재정부가 정치권에서 논의해온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대다수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기획재정부의 ‘경제민주화 관련 쟁점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부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의 대부분을 반대했다.
이 보고서는 대선 후보들이 최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의원들이 국정감사 등에서 관련 질의를 하자 재정부가 경제민주화 관련 쟁점 18개를 추려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먼저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 질서를 저해하는 않는 범위에서 추진하되 극히 예외적인 경우 최소 범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법과 제도보다는 문화나 관행으로 정착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열돼 대기업 규제를 통한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에만 치중한다면 대외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순환출자 금지 움직임에는 사실상 반대의 의견을 나타냈다. 모든 나라에서 순환출자는 가능하고,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없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 역시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며 “출총제와 같은 획일적·사전적 규제를 도입하기보다는 부당거래 감시 강화 등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 기업이 신수종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흡수·통합하기 쉬워질 수 있다는 점을 부작용으로 꼽았다.
대기업이 계열사에 투자하고 지급받는 수입배당금에 전액 과세하는 재벌세를 신설하는 것은 국제기준보다 과도하고 이중과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강제화는 시행됐다가 폐지된 전례가 있어 재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강화는 “소비자 편익, 서민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산업 선진화나 신규시장 창출 등 측면에서 대기업 역할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도급 부당인하, 담합 등 부당행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에는 “거래의 배상금을 노린 ‘묻지마’식 소송이 늘어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경계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 폐지, 담합행위 집단소송제 도입, 담당행위 자진신고 감면제 축소 등 기업의 불공정 행위 방지를 위한 제도 강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전속고발제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른바 ‘리니언시’ 축소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 집단소송제에 대해선 “일부 수용할 필요는 있으나 제기되는 우려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법인세 최고구간 신설과 소득세의 최고세율 인상에 대해선 관련 세제개편을 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다시 제도를 손보는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훼손한다고 밝혔다.
재벌 총수가 1% 지분을 갖고 이른바 ‘황제경영’을 하는 것에 대해선 “지분 소유와 경영권 지배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재정부는 “이 보고서는 단순히 내부 업무 참고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재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