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복수은행 허용 기준 마련…농협·우리은행 아성에 도전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을 관리하는 이른바 ‘지자체 금고’를 놓고 시중은행들의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가 지난 7월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변경에 따라 은행 한 곳이 독점하던 지자체 금고를 복수의 은행이 운영토록 하는 방안을 연내 확정짓는 쪽으로 가닥 잡으면서 각 은행 전담부서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자체 금고 유치에 있어 강자 그룹에 속한 농협과 우리은행의 아성을 깨기위한 물밑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시중은행 실무담당자는 “지차체 금유 유치에 성공하면 승진에 표창, 휴가까지 각종 특전이 제공이 되나 만일 실패할 경우 문책이 뒤 따라 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그 만큼 은행의 매출이나 수익성, 나아가 영업망 확충까지 지차체 금고의 유치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지차체 금고 유치는 대외신뢰도 향상과 거액의 예금, 공무원이라는 우량 고객 확보 등 여러 가지 이점으로 은행권 입장에선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지난 5월 세종시 금고 선정에서는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 등 6개 은행이 입찰 경쟁에서 맞붙어 최종 승자에 1금고에 농협, 2금고에는 우리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 말까지 연간 예산이 8조원인 부산시 금고를 비롯해 천안, 성남시 등 70여 개의 지자체 금고 재선정이 줄줄이 예고되어 있어 은행간 쟁탈전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출혈경쟁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중은행은 관행적으로 지자체 금고를 유치하기 위해 예산 규모에서 통상 0.1%를 행당 지자체에 비공식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키려는 자 Vs 빼앗으려는 자= 지자체 금고 유치에 있어 농협과 우리은행은 절대적이다. 농협은 전국 260개 지자체 시·군·구 금고 중 183곳을 맡고 있다. 반면 우리은행은 예산규모가 크고 상징성을 지닌 서울시와 광주광역시, 세종시 등의 금고를 유치하고 있다. 서울시 금고는 총 24조원 규모로 오는 2014년까지 우리은행이 관리한다. 하루 평균 3조~4조원의 잔고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지난 1915년 전신인 조선상업은행이 운영을 시작한이래 100년 동안 관리해 오고 있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는 2014년에는 서울시 금고 놓고 대형 시중은행간의 혈투가 예상된다. 서울시 당담자는 “우리은행과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는 은행 한 곳으로부터 예산(일반회계와 특별회계) 및 기금을 단독으로 관리하던 방식에서 일반회계와 특별회계·기금으로 나눠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반회계를 유치하는 제1금고 은행이 주거래 은행이 된다.
서울시의회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서울시 금고의 지정·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오는 12월 열리는 시의회 정례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우리은행 독점방식에서 최소 두 개 은행으로 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광주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금고도 광주은행이 독점하고 있어 특혜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복수금고 도입이 초 읽기에 들어갔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색이 강한 지방에서는 농협의 힘은 절대적이다. 특혜 시비 등에 엮이지 않으려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농협을 선정하는 게 다소 부담을 덜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합조직 등 지역기반이 강해 웬만해선 시중은행 입장에선 당해낼 수 없다는 게 관련 시장의 분위기다.
◇빼앗기 위한 ‘출혈경쟁’=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는 법. 지자체 금고 선정엔 다른 요인도 부작용도 작용한다. 각종 축제 등 지자체 행사에 협찬 형식의 기부를 약속해 출혈경쟁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은행은 서울시 금고로 재선정되면서 4년간 15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청계천 이주상가로 개발된 송파구 가든파이브(동남권유통단지) 분양자 대출금리도 서울시의 요청에 따라 대폭 완화시켰다. 신한은행은 인천광역시 금고 유치를 위해 아시안게임 유치지원, 도시축전 등에 자금을 지원했다.
지난 2008년 경기도 금고 유치전에서는 은행으로부터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받고 이를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는 오점도 남겼다.
때문에 과도한 기부금 납부는 은행들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고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은 과당 경쟁을 막으려면 ‘을’의 입장인 은행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갑’인 지자체의 과도한 기부금 납부 요구부터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 부양책 때문에 지자체의 재정이 크게 악화해 예년보다 기부금 요구 압력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기부금 납부 한도를 정하더라도 각 기관에서 많은 금액을 요구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지 않으냐”라며 “예컨대 지자체의 경우 세수의 일정액 이상을 기부금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