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의 과천담론]피감기관 웃게 만든 '부실국감'

입력 2012-10-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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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간의 국정감사가 끝났다. 19대 국회 출범 이후 첫 국감이자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감이었다. 시작과 끝이 함께 한 국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국감은 출발도, 끝도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심지어 ‘사상 최악’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18대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시작된 국감은 초반부터 상대 진영 후보 검증 공방으로 일찌감치 파행을 예고했다.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및 정책 토론의 장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국감장 전체가 정치색에 물들어 있었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중간평가에서 ‘D학점’이라는 낙제점 수준의 점수를 매긴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정기국회 전 30일간 상임위별 국감 실시 위반, 교과위 증인채택 관련 연속 파행, 문방위의 야당 의원 보이콧 사태, 감사위원의 과도한 자리 비우기와 전문성 부족 등 국감이라 말하기조차 부끄럽다는 평가뿐이다.

혜택은 고스란히 피감기관에 돌아갔다. 이명박 정부의 4년을 결산하는 국감이라는 점에서 부실과 무능 등 맹공을 예상했던 피감기관들은 오히려 허탈해 했다. 국감 직전 터진 구미 불산유출사고와 북한군의 휴전선 월남, 국감 중에 발생한 정부종합청사 방화사건 등 여느 해 같았으면 해당 부처를 곤혹스럽게 했을 대형 사건들은 이슈로 쟁점화되지 못했다.

국감 마지막 날 저녁 거나하게 회식을 했다는 모 부처 공무원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면서, 그래도 19대 첫 국감인데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은 몰랐다고 여유롭게 웃었다.

과천 관가에서는 이번 국감을 가리켜 감사위원과 피감기관 간의 공방이 아니라 여야 감사위원들 간의 공방이 난무한 국감이라고 평했다. 어차피 정치인들이 하는 국감인데 정치권의 최대 이벤트를 앞두고 행정부 일에 관심이나 있겠느냐는 비웃음도 뒤따랐다.

결론적으로 대선에 치인 파행국감이 피감기관을 뒤돌아 웃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 4년치의 자료를 모두 챙기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도 쏟아질까봐 조마조마했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대선국감은 ‘부실’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올해 국감에서만 유독 정쟁과 부실이 국감 대표단어가 된 것은 아니다. 대선과 같은 정치일정이 없는 해에도 두 단어는 항상 국감을 장식하는 수식어로 따라다녔다. 정치인을 감사위원으로 하고 있는 탓에 행정부의 감시와 견제라는 제 기능보다는 정치색이 우선적으로 강조됐기 때문이다.

국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국민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곳곳에서 혈세가 새어나가고 이를 노리는 공무원과 결탁한 업자들의 온갖 부정부패가 활개를 치게 된다.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의 투명성 지수와 부패지수의 원인을 피감기관이 웃는 국감에서 찾으려 한다면 감사위원, 즉 국회의원들은 과연 억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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