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현진권 KERI 사회통합센터 소장 "경제논리의 탈을 쓴 경제민주화"

입력 2012-09-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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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글을 자주 쓰는 필자에게 요즘 지인들이 자주 질문한다. ‘경제민주화’가 뭐냐고. 경제민주화는 ‘경제’란 용어가 있으니, 경제관련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배웠던 경제지식을 총동원해도 도저히 무슨 의미인 지 알수 없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배웠던 많은 경제학 관련 과목을 새롭게 떠올려도, 이 용어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필자의 무식을 감추기 위해 독일에서 많이 사용하던 용어라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이 기회에 공부하려고 했다. 내가 학생시절에 공부하지 않았지만, 항상 새로운 지식은 생기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민주화 관련 논문을 읽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미국경제학회에서 구축해 놓은 경제학 관련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EconLit’를 검색해 봤다. 1969년 이후 발표된 논문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꽤나 많은 논문을 기대하면서 의욕적으로 접근해 봤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제민주화(economic democratization)’를 포함한 제목이나 주요 핵심어로 사용하는 논문은 한편도 없었다.

이 정도면, 필자가 공부를 잘못한 게 아니고, 경제학엔 ‘경제민주화’란 개념이 없는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200여년 동안 구축된 경제학적 개념에서 경제민주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 틀 속에서 이해하려는 어리석은 노력은 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용어이다. 과거에는 야당의 전용 용어였지만, 최근 여당까지 경제민주화로 모든 정책을 포장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용어정의에 관한 경제학적 엄격한 접근법을 버려야 한다. 정치용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리는가에 대해 우선 판단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질서를 국민의 힘으로 바꿔놓았다는 성취감과 동경이 있다. 따라서 ‘민주화’란 용어는 우리 시대의 감성적 성지와도 같은 것이다. 누구도 거부할수 없고, 동경하는 착한 용어로 집단 최면 지워진 용어다. 정치인은 우리 시대에 절대 힘을 가진 용어 앞에 ‘경제’란 말을 교묘하게 붙임으로써 ‘민주화’가 가지는 절대적 권위를 얻을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란 깃발을 들었을 때, 그 감성적 권위로 인해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은 이를 잘 이용한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우고, 대기업 누르기, 복지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는다. 어떠한 정책안을 개발해도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한 경제민주화 용어 하에선 ‘민주화’ 정책이 되고 만다.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경제민주화 개념이므로, 구체적인 정책안들은 애초에 경제민주화와 아무런 관계도 없으므로, 논란이 무성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같은 여당 내에서도 정책방향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내놓는 정책은 대기업 규제가 핵심이다. 그냥 큰 게 나쁘기 때문에 큰건 모두 규제해야 한다는 정책방향이다. 경제민주화란 용어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프레밍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정치경쟁은 프레밍 경쟁이다. 구체적인 정책안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를 어떻게 포장하여 유권자들에게 쉽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의도를 읽었을땐, 경제민주화는 효과적인 정책수단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문제는 결코 호락하지 않다.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결정하게 되면, 반드시 경제비용이 따른다. 이 세상엔 절대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경제환경이 어려워 우리 경제의 앞날은 밝지 않다. 지금 우린 좀더 많은 대기업을 만들려는 노력은 않고, 대기업을 누르려는 정책만 있다. 대기업을 억제한다고, 절대 중소기업이 살찌지 않는다. 단지 감성적인 만족만 있고, 누군가에게 정치적 승리만 줄 뿐이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정치경쟁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동반하락으로 가게 한다. 경제논리의 탈을 쓴 경제민주화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루게 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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