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채용 학력파괴 실업해소 긍정적… 대졸자 역차별, 비정규직, 남학생 외면은 문제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과 국책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의 올해 고졸 행원 선발 규모는 870명으로 지난해보다 29.6% 증가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보다 135% 증가한 고졸 신입행원 200명을 채용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보다 16.7% 늘어난 140명을 선발했다. 산업은행은 120명(30.4%↑), 기업은행은 110명(64.2%↑), 농협은 100명(203.0%↑), 하나은행은 133명(42.2↓), 국민은행은 20명(150.0%↑) 등 은행권의 고졸 채용이 봇물이 터지고 있다.
지난해 은행권 고졸 채용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등 떠밀듯이 시행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막상 고졸직원들을 뽑아보니 근무성적이 좋은데다 사회적으로도 고졸 인력 실업난 해소에도 도움이 돼 올해 고졸 채용인력을 대폭 늘린 것이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은행권은 상고 출신 직원들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데다 영업점 행원으로 고졸자를 채용하는 데 큰 부담이 없는 점도 한몫했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지난해부터 채용된 고졸자를 고졸 행원 2.0세대로 부르고 있다. 고졸 행원 1.0세대는 과거 상업 고교 출신자들로 가정형편 때문에 정규직에 입사해 임원까지 올라간 세대를 말한다. 2.0세대는 정부 정책에 따라 지난해 은행권에 취업한 고졸 행원들로서 대부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출발했다. 1.0세대와 달리 2.0세대는 고졸 졸업생의 85% 이상이 대학을 진할 정도로 고학력화로 은행에서 예전과 같은 대우를 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0세대 고졸 취업자들이 단절 이후 은행권에서는 고졸자와 대졸자 간 차별이 있었고 승진 대상에서도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2.0세대에서는 이 같은 학력차별이 합리적 업무조정과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 한 한낱 정부가 추진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또 1.0세대와 달리 2.0세대에서는 대졸자 역차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1~2020 중장기 인력수급전망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전문대졸 이상 신규 인력은 총 416만2000명인데 반해 취업시장에 공급되는 인원은 466만3000명에 달해 50만명이 초과 공급되고 있다.
대졸 인력 취업난도 심각한 분위기에서 고졸 졸업생들이 취업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최근 은행권이 고졸 행원을 늘리면서 대졸자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신규정원을 늘리지 않은 채 고졸 행원을 늘리면 대졸 행원들이 들어갈 자리를 빼앗는 셈이 돼 사회적 문제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은행권이 진정으로 고졸 채용을 늘릴 생각이면 고졸 신입행원을 늘리는 비율만큼 신규 행원 수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2.0세대 고졸 행원 채용에서도 여자 고졸자보다 남자 고졸자가 비집고 들어갈 문이 적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은행들이 남자 고졸자가 신규 행원으로 취업을 꺼리는 이유는 병역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군 복무 시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KDB산업은행은 채용 때부터 군 복무 후에도 공백이 생기지 않게 복직 보장과 경력 인정하고 일정액의 급여지급 등을 약속한 점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 밖에 외국어나 전문지식 등 전반적인 자질이 대졸자와 비교하면 부족한 점도 있어 이에 대한 업무교육 문제나 한정된 업무영역에 배치한다는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올해 은행권이 고졸 채용을 정규직화하는 곳이 늘고 있어 고졸 행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특히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최근 “고졸을 몇 명 더 뽑는 수준이 아니라 고졸 출신 행장이 나오는 은행을 만들겠다”며 학벌타파 파격 인사를 선언해 다시 2.0세대가 1.0세대가 이룬 업적을 이어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