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조병화의 '첫사랑'중에서-
첫사랑의 시는 언제 읽어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가 문뜩 그 옛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 없이 넓어진다.
첫 사랑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게 첫 사랑이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른다. 이론을 발표한 러시아 심리학자 이름을 딴 것인데 어떤 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인지적 불평형 상태가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긴장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첫 사랑의 감정은 소중하다. 아련히 첫 사랑하던 때를 떠올리면 찬란한 슬픔에 잠기고, 그 감정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삶에 지칠수록, 경영이 힘들수록 첫 사랑의 감정을 회상해보는 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꼭 첫 사랑의 추억이 아니어도 좋다. 과거 순수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읽기를 들춰 보거나, 가족이나 지인(知人)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거나, 주위의 있는 좋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홍사중 선생은 저서‘리더와 보스’에서 “보스는 뒤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앞으로 가라고 하지만 리더는 솔선수범 먼저 앞으로 가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면서 “지금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필요한 시대” 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정빈 씨는“부하직원 마음속에 있는 고독을 건드려야 참 리더십이 생겨난다” 고 말했다. 큰소리치며 몰아붙이고 독려하는 보스보다는 이메일로 감성을 파고드는 리더가 통하는 시대란 얘기다.
그렇다. 과거에는 이성적인 CEO가 최고였지만 21세기에는 가슴이 뜨거운 경영자,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경영자,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경영자가 부각되고 있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감성적 지능’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수년전 미국의 유명 경제전문지인 ‘포천’ 에서 ‘잭 웰치, 당신의 시대를 지났습니다’라는 기획기사를 썼는데 이는 바로 ‘이성적 경영자’시대의 종말을 예견한 것이다.
최근 들어 편지로, 메일로 부하직원들의 마음속 고독을 건드리는 경영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데 이는 참으로 반가운 현상이다.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인문학을 전공한 직원들에게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서울대 인문대학장을 지낸 변창구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CEO들은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있고, 거기를 인문학이 채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특히 성공한 CEO일수록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더 하다”고 말했다.
며칠 폭우가 내리더니 어느덧 여름이 가고 있다. 대낮에 뜨거운 태양은 여전하지만 아침저녁 공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부지불식간에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불황의 깊은 터널 속을 지나는 올 가을엔 ‘감성 CEO’ 가 돼 보자.
그러기 위해선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실적과 씨름하고 경쟁에 치어 낙엽이 단지 쓰레기로 보인다면 그 경영자는 부하직원의 고독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강팍해진 마음을 치유하는데 결코 많은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다. 하루에 10∼20분 정도 일상을 떠나 책 한 구절을 음미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옛 추억을 떠올리면 어느 순간 우리들의 마음을 넉넉해질 것이다.
CEO들이여!, 올 가을엔 딱딱한 경영서적 대신 시와 수필과 친해져 보는 게 어떻겠는가. 첫사랑 할 때의 그 애틋한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가슴 들킬까봐
애꿎은 손톱만 깨물다가
그때부터 조금씩
가슴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
-이해인의 '첫사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