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짐 공간 합친 2박스…뒤쪽에 적절한 무게 실려
왜건(Wagon)의 사전적 의미는 마차(馬車)다. 자동차의 경우 엔진룸과 승객석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눈, 2박스 스타일의 차를 의미한다. 현대차 i30와 폭스바겐 골프 등은 전형적인 3박스 타입의 세단에서 꽁무니를 잘라낸 모양의 ‘해치백’이다. 반면 왜건은 꽁무니를 잘라내기보다는 더 큰 짐공간을 만들어 커다란 승객석을 만든다.
이러한 왜건의 역사는 자동차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초기 자동차는 마차의 변형이었다. 엔진을 앞에 두고 뒤쪽에 커다란 박스 타입의 승객석을 두는 방식이다. 요즘 왜건이 이러한 형태다.
국내 최초의 왜건은 1971년 현대건설 자동차사업본부가 내놓은 ‘포드 20M 스테이션 왜건’이다. 반조립 형태로 등장한 이 차는 현대차가 포드와 결별하기 직전까지 내놓은 20M(세단형)가지치기 모델이다. 왜건은커녕 자동차도 귀했던 시절이어서 국내에선 대접받지 못했다. 커다란 녹십자를 붙인 구급차 정도가 거리를 누볐을 뿐이다.
본격적인 국내 고유의 왜건은 현대차 포니 왜건이다. 현대차는 포니를 바탕으로 왜건과 3도어, 픽업 등 가지치기 모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상품기획력이었다.
그러나 국내시장에선 왜건이 설자리가 없었다. 자동차가 성공과 부를 상징하던 시절, ‘자동차=고급 소비재’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때문에 왜건은 ‘짐차’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선입견을 꽤 오래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 자동차 문화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왜건은 뚜렷한 메리트를 지닌다. 세단이나 해치백이 따라올 수 없고, SUV가 흉내낼 수 없는 장점도 가득하다. 우리가 몰랐던, 그래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는 왜건의 장점을 살펴보자.
이유는 뚜렷하다. 자동차는 앞뒤 50:50 무게배분이 최적으로 맞았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차 앞에 엔진을 얹은 차는 필연적으로 앞쪽이 무겁다. 엔진과 트랜스미션, 조향장치 등이 차 앞에 몰려있는 전륜구동차는 조금만 빨리달려도 코너에서 바깥으로 밀려나기 쉽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등 슈퍼카가 엔진을 차체 중앙에 두는 이유도 앞뒤 무게배분을 적절히 맞추기 위해서다. 반면 왜건은 뒤쪽 짐공간 덕에 뒤쪽에도 적절히 무게가 실린다. 후륜구동이라면 더 안정감이 뛰어나다.
때문에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 볼보 등은 고성능 차를 개발할 때 항상 왜건 차체를 염두에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 스웨덴 볼보는 레이스에 나갈 때 언제나 왜건형을 내보내기도 한다.
늘어난 무게 탓에 직선에선 다른 차에 밀린다. 그러나 꺽임이 심한 길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탄탄한 접지력과 안정적인 자세를 앞세워 코너와 코너의 정점을 잘라먹는 맛이 일품이다.
◇ 왜건의 제동력은 세단을 앞선다= 제동력도 뛰어나다. 달리던 자동차는 급제동 때 차체 앞쪽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앞쪽이 주저앉는 이유도 이러한 관성 때문이다. 이 때 뒷바퀴가 위로 들썩거리기도 한다. 즉 앞쪽에 무게가 실린차는 앞바퀴 2개만으로 접지력을 만들고 이는 제동력으로 이어진다.
반면 뒤쪽에 무게가 적절하게 실린 왜건은 사정이 다르다. 급제동 때 앞바퀴는 물론 뒷바퀴까지 노면을 눌러줘 접지력을 키운다. 동일모델의 자동차와 같은 주행환경이라면 접지력이 크고 넓을수록 제동력이 커진다. 전륜구동차보다 후륜구동 자동차의 제동거리가 짧은 것도 이런 이유다. 뒷바퀴에 갖가지 구동장치가 몰려있어 적당한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 냉장고도 집어삼키는 뛰어난 공간 활용성= 왜건은 공간활용도가 뛰어나다. 부피가 크거나 길이가 긴 물건도 손쉽게 실을 수 있다. 뒷 시트를 접으면 웬만한 소형 냉장고 하나쯤 거뜬하게 삼킬 수 있다.
비슷한 모양새의 SUV도 있다. 그러나 SUV가 4WD의 기능을 사용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연간 주행거리 2만km를 기준으로 4WD를 사용하는 비율은 100km 안팎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SUV 판매의 90% 이상이 2WD인 것도 이런 이유다.
결국 2WD방식의 SUV보다 승용차를 바탕으로 개발한 왜건의 장점이 더 많다. 연비와 승차감, 주행성능은 왜건이 앞선다.
자동차 후진국 또는 신흥시장일수록 소형차와 세단을 선호한다. 거꾸로 자동차 선진국으로 갈수록 왜건의 판매 비율이 높고 종류도 다양하다. 실용주의가 강한 유럽에선 에스테이트(왜건의 유럽식 명칭)가 인기다. 미국도 기다란 풀사이즈 세단을 바탕으로 다양한 왜건이 등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