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안팎서 ‘대선 경선 후보직 사퇴’ 요구까지…박 캠프 ‘대국민 사과’ 등 선제적 대응책 마련 부심
‘4·11 총선 공천헌금 의혹’으로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공천헌금 제공 의혹을 받고 있는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 모두 박 후보의 측근이고, 당시 박 후보는 ‘당대표’와 같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박 후보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내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제2의 차떼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공격기회를 잡은 야당은 박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고, 김문수 경기지사 등 새누리당 내 다른 대선후보들까지 공세에 합류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떼기’와 ‘탄핵 역풍’ 역경 속에서 ‘천막 당사’로 당을 구했던 박 후보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지 여론의 이목이 쏠려 있다. 박 후보 캠프에서는 ‘대국민 사과문’ 발표 등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다.
◇ 새누리당 안팎서 ‘박근혜 책임론’ 대두 = 박근혜 후보는 지난 4·11 총선 당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이 때문에 비박(非박근혜)계에선 ‘공천학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박 후보는 그러자 “공천과 관련해 어떤 불법이 발생한다면 즉각 후보 자격을 박탈하겠다. 공천이야말로 정치쇄신의 첫 단추”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박계는 그 책임을 박 후보가 져야 한다고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 2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충북·충남 대선 경선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이번 의혹에 대해서 박 후보가 책임지고 수사를 마무리해서 당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또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우리 당에서 공천헌금을 줘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며 “대한민국의 ‘돈 공천’, ‘쪽지 공천’, ‘계파 공천’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태희 후보는 “당이 사당화됐다는 얘기가 많고 이번 경선만 해도 사실상 결과가 뻔한 추대대회라는 지적이 있다.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일이 없도록 공천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했고, 김태호 후보는 “박근혜 대세론은 허망한 모래성”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은 박 후보의 대선 불출마를 요구했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번 사건을 “조선시대 매관매직에 버금가는 조직적 부패사건이자 현대판 국회의원 매관매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검찰은 이번 일을 단순, 단독 사건으로 꼬리자르기를 해서는 안 되며 박근혜 후보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수사해야 한다”면서 “박 후보도 당내 경선 후보 사퇴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지난 총선 공천 자체를 박근혜 후보가 다 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가뜩이나 박 후보에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적었는데 이제 더 나빠졌다”며 “과감한 수습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안철수의 ‘언행불일치’ 논란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라며 “대선 불출마까지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적 책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고민 깊어지는 박근혜, 대국민 사과 나설까 = 박근혜 후보는 수백억원대의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해 당이 벼랑 끝 위기로 몰린 상황에서도 지난 2004년 17대 총선을 사실상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다. 당시 당 대표로서 충남 천안 연수원의 국가 헌납과 대선자금 상환을 위해 당사를 매각하고 ‘천막당사’를 운영하는 등 고강도 쇄신책을 썼다. 그 결과 당시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개헌 저지선(100석)을 훌쩍 넘긴 121석(지역구 100석+비례대표 21석)을 차지하며 당의 기틀을 다시 세웠다.
박 후보는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 2일 “(관련자들의) 말이 서로 주장을 달리하고 어긋나니까, 검찰에서 확실하게 의혹 없이 밝혀야 할 것”이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박 후보 캠프에서는 “안일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고,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 캠프는 전날에 이어 3일에도 대책회의를 열어 가능성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두고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캠프 한 관계자는 “질질 끌다가는 메가톤급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야당의 정치공작을 포함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캠프에선 현영희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으로부터 해명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 일각에선 박 후보가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캠프의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4·11 총선 공천 당시) 공천위원회가 가지고 온 것을 비대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인증을 했으니까, 그런 데(부정을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서 챙기지 못한 책임이 저를 포함해서 모두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위원은 “대국민 사과 선언을 해서 조치를 할 생각도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저는 그렇다”면서 “일단은 상황을 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