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마음씨 곱고 주위 사람 배려할 줄 아는 주인공은 반드시 성공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악역은 나중에 반드시 실패하고 결국에는 파멸한다.
그런데 요즘 착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는 이 고전적인 구조가 깨지고 있다. 착한 캐릭터도 예전처럼 미련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챙긴다. 반대로 나쁜 캐릭터가 무조건적으로 나쁜 행동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다. 이처럼 착하고 착하지 않음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심지어는 착하지 않은 것을 동경하기까지 한다. 여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는 남을 비판하는 말을 여과 없이 ‘독설’로 내뱉는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기도 한다. 착한 것보다는 착하지 않은 것이 신선하고 오히려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쿨(cool)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쿨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조건 착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착하다는 것은 남에게 이용당하기 쉬우며 더 나아가서 바보 같다는 말과도 동의어가 된다. 그러므로 자기 방어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쿨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자신을 두고 쿨한 사람이라고 선전하고 다닌다.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서 모험을 즐기고 돌아설 땐 일말의 미련도 두지 않는 바람둥이 같은 남자에게 수많은 여자들은 쿨해 보인다며 목을 맨다.
착한 사람이 상을 받는 시대는 이제 영영 간 것인가? 조금 못 되고 차가워 보이는 사람들이 쿨하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는 요즘을 돌아보면 그럴 법 하다 싶고, 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아쉽다. 여기저기 전전하는 사랑이 쿨해 보이긴 하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순애보적인 사람이 그립게 마련이다. 싸가지가 좀 없고 못된 사람이 쿨하다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상은 착한 사람이 받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