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백화점이 공정위 계열사?

입력 2012-05-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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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정치경제부 기자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월 취임한 후 동반성장 문화조성 등 역대 어느 위원장보다 시장경제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는 평가다. 유통 가맹 건설 등 분야를 막론해 제도를 만들고 시정조치를 내렸다. 각계 업체 대표들과의 간담회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위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김 위원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운다. 김 위원장의 1년 반 가량의 임기에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런 ‘여론의 닻’을 공정위가 달았기 때문일까. 공정위는 지난달 25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상위 3대 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 등 마트 3사에 중소기업 전용매장을 설치해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또 생활용품, 미용기구 등을 생산하는 81개 중기업체 추천 목록도 보냈다.

관련 업체들은 이 같은 공정위의 행위가 매장상품의 구성까지 간섭하는 월권행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압박, 팔비틀기, 옥죄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김 위원장이 지난 3월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인 행복한세상 백화점을 방문해 취합한 요구 사항을 전달한 것이며 협조 요청일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오비이락(烏飛梨落)이다.

공정위는 현재 대형유통업체 판매수수료 인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오는 9일에는 11개 유통업체 임원들과 유통분야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다. 유통업체가 협조 요청이 아닌 압박이라고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필요한 일이나 행동을 청하는 ‘요청’과 기운을 못 펴게 세력으로 내리 누르는‘압박’이라는 단어는 차이가 크다. 그러나 요청도 그 주체와 수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압박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메일도 강제성이 강한 공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통업체들의 불평이 엄살이 아닌 이유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정위가 ‘중소기업 살리기’라는 소명 의식에 함몰돼 세부 영업행위까지 일일이 간섭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공정위는 중소기업의 헬리콥터맘(헬리콥터처럼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챙겨주는 엄마)이 아니라 공정한 시장경제의 수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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