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해외기업 상장 ‘속빈강정’

입력 2012-04-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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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규 증권부 기자

중국 송(宋)나라에 농부가 있었다. 그는 모내기를 한 후 벼가 생각만큼 자라지 않자 벼의 순을 조금씩 잡아 뺐다. 농부는 벼가 더 자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러나 이틑날 논에 가 보니 벼는 다 말라죽어 있었다. 발묘조장(拔苗助長).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이다.

중국고섬을 보면 송나라 때 살았다는 농부의 모습이 연상된다.

한국거래소는 최근 몇년간 해외기업 유치를 역점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덕분인지 해외기업의 국내 주식시장 상장은 증가세를 나타내는 듯 했다.

그러나 작년초 거래소가 세계 100대 기업을 유치하겠다며 해외기업 유치에 한층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상장한 중국고섬이 두달만에 회계문제로 거래가 정지되면서 찬물을 뿌렸다.

게다가 일본 기업인 네프로아이티까지 자본잠식과 횡령사건으로 상장폐지되면서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이 같은 영향 때문에 작년에만 10여개 외국기업이 국내 상장계획을 중도 포기했다. 투자자들의 심리도 좀처럼 좋아질 기미가 없다.

중국고섬은 거래정지 후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 걸음이다. 거래소는 작년 11월에 이어 지난 12일에도 중국고섬에 대한 상장폐지 결정을 보류했다.

거래소가 판단을 미룬 이유는 투자자 보호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정작 애를 태우는 것은 거래소의 애매한 태도다. 상장폐지 여부를 1년 넘게 기다리는 투자자들에게 상장폐지 결정이 미뤄지는 것은 희망고문과 마찬가지다.

투자자들은 계속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작 중국고섬의 상장심사를 맡았던 거래소는 서류상으로는 회계위험을 사전 인지하기는 어렵다는 핑계만 늘어 놓을 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대신 해외기업 유치에만 계속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은 원하는 것은 값싸고 음식 종류가 많은 뷔페가 아니다.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제대로된 기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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