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여의도 진출‘기대반 우려반’
기획재정부 출신 실력자들이 이번 19대 국회 입성에 대거 성공했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들은 벌써부터 험난해질 국정감사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이들이 온갖 자료를 요구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긴장하는 분위기다.
또 복지포퓰리즘 對 재정 건전성이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들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정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재정 분야 관료들을 향한 정치권의 ‘러브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관가의 입방아에 가장 자주 오르내렸던 재정부 출신 당선자는 단연 유성걸(54세) 전 재정부 2차관이다. 그는 올 1월 재정부 2차관직에서 퇴임한 후 3달여 만에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대구 동구갑에 당선돼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관가에서는 정부 관료가 공백 기간 없이 바로 당선된 경우는 전후무후하다며 “유 전 차관은 관운(官運)을 타고났다”라고 평했다.
현 선거법상 가족관계증명서에 등록된 이름으로 입후보 해야 하는데 해당 증명서에는 이름이 류성걸이 아닌 유성걸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 바로 정계로 뛰어들다보니 보니 미처 법적인 이름 변경절차를 밟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평소 그를 알던 지인들이 유 후보자를 다른 사람으로 순간 착각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 재정부 유 전 차관 당선에 바짝 긴장 = 재정부는 유 전 차관의 당선에 기대와 ‘우려’가 반반 섞인 반응이었다. 재정부 직원들은 “일에 대한 능력과 열정이 남달라 잘 할 것”이라고 응원하면서도 재정부 사정을 훤히 아는 그가 시어머니 역할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재정부 직원은 “수치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완벽주의 성격으로 함께 일할 때 힘들었다”며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는 더 심할 것 아니냐”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 같은 꼼꼼한 성격 때문일까. 현직에 있을 때 능력을 인정 받아 이명박정부 예산 관련 업무를 실질적으로 도맡았으며 차관 시절엔 2013년 균형재정 목표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새누리당이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 ‘꽂아주기’식 공천을 받은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은 재정부 출신 선임 국회의원들 처럼 그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나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도록 염두해 두고 있으며 유 전 차관 또한 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의원이 이번에 무려 82.5%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 것은 재정부 출신 ‘예산통’이었던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평이다. 심지어 18대 국회에서 지역구 예산을 많이 챙겨 ‘예산신(神)’이라고까지 불렸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활약이 후배인 유 전 차관의 이번 공천과 당선에 유리하게 영향을 미쳤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통합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당의 텃밭인 광주광역시 남구에 예산통 장병완(59세) 의원을 공천했으며 그도 마찬가지로 67.8%의 높은 득표율로 상대 후보를 크게 앞질러 재선됐다. 행시 17회인 그는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에는 기획예산처에서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예산통들이 19대 국회에서 어떤 대결을 펼칠지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이다.
◇정치권서 재정부 출신 인기 왜? = 그렇다면 이들 예산통들이 정치권에서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 의원실은 재정부 예산 전문가들이 정치권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쌓아가는 것에 대해 “예산을 모르는 의원은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떼쓰기’ 밖에 할 수 없지만 재정부 출신이다보면 예산을 어떻게 확보하고 국비 지원을 어떻게 받는 등의 조건을 잘 알아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재정부 출신들이 정치인이 되면 자꾸 예산을 따오니 꾸준하게 인기를 끌게 된다는 것.
재정부 출신 조세정책 전문가들이 재선, 삼선에 성공하는 것도 이 같은 전문성의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조세정책을 책임졌던 세제실장 출신인 김진표(64세) 민주통합당 의원은 경기 수원시정에서 3선에 성공,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김 의원은 국세청, 재무부 세제총괄심의관, 국세심판소 상임심판관,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등을 거쳐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까지 지냈다.
마찬가지로 이용섭(60세) 민주통합당 의원도 광주 광산구을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정경제부 세제총괄심의관, 세제실장, 국세청장,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두루 거쳤다. 18대 국회에서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법인세·소득세 인하와 관련해 감세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연소득 3억 이상 부자들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재정부 출신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로 사회나 조식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술관료)라 할 수 재정부 출신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관가에서는 재정부 고위 관료들 중 앞으로 또 누가 정치권으로 행보를 이어갈지 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