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블루오션을 찾아라]탄탄한 스토리가 살 길…‘블록버스터=흥행’깨졌다

입력 2012-04-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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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저예산 영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화두’는 규모였다. 이 시기 충무로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몸집 불리기에 나섰고,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던 ‘블록버스터’란 개념도 도입했다. 그 시작점은 1998년 영화 ‘퇴마록’이다. 지금으로선 ‘저예산’으로 불릴 제작비 15억 원대의 영화였다. 당시 이 영화의 메인 포스터 카피는 ‘98년 8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온다’였다. 시계를 현재로 돌려보자. 지난해 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 총제작비가 무려 300억 원대에 달한다. 불과 13년 만에 몸집은 20배로 커졌다. 불어난 몸집만큼 각각의 영화들이 길러온 시장성도 마찬가지일까.

▲영화 '친구' 스틸컷.
◆ 규모와 흥행은 정비례

범위를 영화로만 한정시켜보자. ‘쏟아 부은 만큼 그림은 나온다’는 비교적 평범한 진리가 성립될 수 있겠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가 간다. 우리 돈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다. ‘전 세계 꿈의 공장’이란 별칭답게 상상하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옮긴다. 기본적으로 재미와 흥미 측면에서 할리우드 영화는 상업성에 최적화된 일종의 완성품이다.

국내 영화계도 ‘한국형’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소재 측면에서 다양한 블록버스터 개념을 쏟아냈다. 2001년 총 제작비 28억원이 투입된 ‘친구’는 누적관객수 818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신화를 썼다. 앞서 개봉한 1999년 ‘쉬리’ 역시 24억원이 투입돼 6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두 작품의 성공 이후 투자 대비 수익률의 정비례 관계가 성립됐고, 충무로의 제작비 상승 요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거품론까지 불거졌지만 확장된 관객들의 기대심리는 폭발했다. 2003년 110억원이 투입된 ‘실미도’가 1108만명을 동원하며 꿈의 1000만 시대를 열었고, 이듬해 개봉한 190억원 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1174만명으로 ‘실미도’를 앞질렀다.

이후 2005년 ‘웰컴 투 동막골’(80억원, 800만), 2006년 ‘왕의 남자’(60억원, 1230만), ‘괴물’(140억, 1301만), 2007년 ‘화려한 휴가’(100억, 730만), 2008년 ‘놈놈놈’(200억, 668만), 2009년 ‘국가대표’(110억, 839만), ‘해운대’(160억, 1132만), 2010년 ‘아저씨’(64억, 624만) 그리고 지난해 ‘써니’(40억, 737만)와 ‘최종병기 활’(90억, 745만)이 나왔다.

‘쏟아 부은 만큼 그림은 나온다’는 불문율이 흥행 공식에서도 성립된 것이다. 이 공식이 지금의 충무로에서도 이어지고 있을까.

▲영화 '괴물' 스틸컷.
◆ 대작 영화의 흥행?…“이젠 아니다”

지난해 ‘써니’와 ‘최종병기 활’이 한국영화 흥행시장을 주도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침체일로였다. 여름 시즌 개봉한 ‘7광구’ ‘퀵’ ‘고지전’ 등 이른바 ‘100억 트리오’가 흥행에 실패했고, 연말 개봉한 300억 대작 ‘마이웨이’는 참패를 넘어 ‘붕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성적표를 받았다. 연말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흥이 있으면 망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철저한 실패는 시장 자체의 위축을 가져와 전반적인 한국영화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한국영화 최초의 3D란 타이틀로 화제를 모은 ‘7광구’는 총 제작비 116억원을 투입해 230만 명을 끌어 모으는데 그쳤다. 관객 한 명당 3500원으로 잡았을 때 제작사는 80억 원 수준의 수입을 올렸다. ‘7광구’ 실패 뒤 충무로에서 기획 중이던 여러 3D 영화가 제작 연기 및 백지화를 거듭한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마이웨이’는 더욱 심했다. 순제작비 280억, 마케팅비 포함 300억원이 넘는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는 213만 명. 손익분기점이 1000만 명임을 감안할 때 계산조차 나오지 않는 손실액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앞선 두 작품을 포함해 대작 영화의 실패 요인으로 네러티브의 실종을 꼽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한국관객들은 유난히 스토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작들이 에피소드 위주로 이어지면서 긴 호흡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한 부분이 패인이다”고 분석했다.

▲영화 '화차' 스틸 컷.
◆ 결국 해법은 ‘작은 영화’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올 초 충무로의 시선을 사로잡은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노장’ 정지영 감독이 1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부러진 화살’이다. 순제작비 5억원, 총 제작비 15억원의 저예산 영화인 ‘부러진 화살’은 당초 아무런 주목을 끌지 못했던 영화다. ‘석궁테러 사건’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와 한국 영화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법정영화, 그리고 국민배우이지만 티켓 파워 면에서 다소 뒤쳐진 안성기 주연 등 강점보단 약점이 많은 영화였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탄탄한 스토리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현실 문제에 대한 풍자 등이 입소문을 탔다. 지난 달 스크린에서 막을 내린 ‘부러진 화살’의 최종 스코어는 346만 명. 최종 누적수익은 256억 원에 달했다.

‘부러진 화살’을 시작으로 올해 박스오피스 1위는 모두 한국영화의 차지였다. 45억원 대 제작비가 투입된 ‘범죄와의 전쟁’을 제외하면 ‘러브픽션’(20억 원), ‘화차’(18억원), ‘건축학개론’(23억원) 등이 모두 제작비 25억원 미만의 중-저예산 영화라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어 소위 ‘돈을 남긴 작품’들이다.

이에 대해 한 영화사 관계자는 “물량 공세보단 스토리와 완성도에 치중하는 트렌드가 형성된 것”이라며 “‘블록버스터=흥행’으로 규정된 등식도 이젠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배급사인 쇼박스 관계자는 “‘마이웨이’ 이후 투자 시장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이야기만 좋다면 돈이 몰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저예산 독립영화부터 블록버스터까지 결국 흥행 성적표는 이야기가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러진 화살’에 출연한 안성기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그 역시 “간결하지만 힘을 갖춘 스토리는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와 함께 설득력까지 전한다”면서 “볼거리 측면에서도 확실한 변별력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결국 승패는 스토리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꿈의 1000만 시대와 함께 외형적 급성장을 이룬 한국영화. 최근 흥행 성적표를 통해 제2의 도약을 위한 해법찾기에 나선 영화제작자들이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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