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사회 강요하는 결혼이란 틀 과감히 거부…법정·행정적 불평등 개선 시급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지민과 시간강사 철은 6년째 동거 중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게 결혼과 다를게 뭐가 있느냐고 주위사람들은 반문하지만, 이들은 결혼제도를 거부한다.
한국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게 개인과 개인을 넘어 집안과 집안의 관계로 확장돼 버리지 않느냐고, 결국 그 안에서 당사자들의 관계는 매몰되지 않느냐고 이들은 질문한다.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자에게 남자의 역할을, 여자에게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틀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비혼을 고집하는 이들의 고민이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지민은 노동운동을 하던 부모님의 이혼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고 철은 정신지체 동생을 둔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다. 지민이 겪었던 가정의 균열과 철이 놓인 경제적 상황은 이들이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과정이자 이유이다.
이처럼 결혼을 거부하고 동거라는 형태로 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던 이들의 일상은 그러나 임신테스터기에 ‘두 개의 선’이 나타나면서 요동치게 된다. 예기치 못한 ‘아이’라는 존재가 그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들은 임신 후에도 비혼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험은 아이를 출산하고 난 후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내린다. 아이가 선천성 이상으로 태어나자마자 큰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은 수술지원금 혜택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인 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
지민 감독은 “비혼이라는 단어가 있고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공동체를 찾아
비혼주의자나 비혼 커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는 아팠다.
카메라는 외부를 향하는 대신 비혼 커플인 두 사람의 내부를 비췄다. 그 과정에 비혼 커플이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과 비합리적인 제도가 더욱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겼다.
기존 체제에 도전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결국 아이로 인해 현실에 순치된 상황. 한 비혼 커뮤니티에선 ‘너무 쉽게 타협했다’며 이들을 책망하기도 했다. 지민 감독은 “일종의 죄의식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떤 측면에서는 (비혼에 관한)얘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민 감독은 “누구나 독신생활자로서 비혼을 주장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누군가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런 균열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비혼에 관한) 여러가지 제안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영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듯 원치 않는 사람은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비혼인구 늘고 있지만…= 비단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지민과 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비혼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1인 가구 역시 2000년 약 222만 가구에서 2010년 약 403만 가구로 급증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에 달한다.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결혼을 가족간의 결합으로 보는 의식도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세 이상 70세 미만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2030년 한국인의 미래인식 및 가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은 당사자와 증인만 참석하는
의식으로 바뀔 것이다’라는 문항에 동의하는 비율은 53.4%로 나타났다. ‘결혼식은 앞으로도 가족과 친지가 모두 참석하는 성대한 행사일 것이다’라는 문항에는 47.2%가 동의했다.
결혼식은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할 것이다는 문항에도 42.8%가 그럴 것이다고 답했다. 이밖에 입양에 찬성하는 비율은 74.6%, 독신 찬성 61.1%, 동거찬성 50.6%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비혼 출산에 찬성하는 비율은 35.9%, 동성간 결혼을 찬성하는 비율 16.2%로 상대적으로 낮아 혼외 출산과 동성결혼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노영진(43·여성)시는 “한국사회의 경우 정상적인 결혼이나 가족의 테두리가 너무 좁다”면서“유럽과 같은 선진국처럼 사실혼이나 동거, 혼외출산 등에 대한 열린 시각과 함께 법적·행정적 차원에서의 불평등도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